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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옥창열/시조시인.수필가.
1
느려서 행복한 땅 라오스를 가다
한바탕 스콜 내려 불어난 메콩 강이
콧노래 부르며 4천 리를 적실 동안
더위에 지친 시간은 오수에 빠져있다
흰 구름 걸린 고봉 병풍처럼 감싼 농가
검둥개는 손이 와도 짖을 줄을 모르고
지렁이 입에 문 닭이 활개치며 내달린다
제발로 느릿느릿 집을 찾는 소 떼들
가진 것은 없어도 한가로운 사람들
운명에 순응해 사니 눈빛이 그저 맑다
돌아가면 인생을 차근차근 반추하며
시간을 멈춰 서서 심호흡한 다음에
머릿속 텅 비운 채로 석양을 바라보련다
2
세밑에 황산(黃山)을 오르다
소중한 내 반쪽과 황산에 오르는 날
길고 긴 삭도(索道)에 오금이 저려온다
잠시 후 얼굴 내미는 신비한 돌산 풍경
웅장한 기암괴석 운무 속에 솟구치고
꽃 같은 황산송(黃山松) 꿈속 붓에 피어난 듯
모두들 비명 지르며 추억 담기 바쁘다
세밑의 한기(寒氣)가 살 속을 파고들고
세월은 흘러가도 추억은 늙지 않네
여기를 산다는 사실이 행복할 따름이지
* 황산(黃山) : 중국 중동부 안휘성의 명산
3
시리도록 푸르른 바다 너머
-남국의 섬 오키나와-
뜨거운 태양 아래 점점이 흩뿌린 섬
푸르른 바다 너머 무엇이 숨었을까
모두가 꿈꾸던 낙원 저곳이 아닐는지
해풍 거센 만좌모에 남국 식물 짙푸르고
류큐 왕 살던 전각 절벽 위에 우뚝한데
길동이 세운 율도국 찾을 길 전혀 없네
원폭을 부른 격전 벌어진 해변가에
집단 광기 망령들이 춤추며 배회하네
슬프다 동포 희생자만 만 명이 넘는다니
* 만좌모 : 오키나와 중부의 국립 자연공원
4
동토의 왕국 블라디보스토크를 가다
어쩐지 찌뿌둥한 하늘이 어울리고
4월인데 겨울 엉덩이가 무거운 곳
연록의 나뭇잎 피는 서울과는 딴판이다
냉전시대 떠올리는 레닌상과 혁명광장
정수리 짓누르는 거대 군함 주위에서
한 쌍의 신혼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다
2만 리 시베리아 동토를 가로질러
태평양에 다다른 개척정신 기억하듯
말없이 넘실대면서 지켜보는 아무르 만
시내엔 파스텔빛 원색 건물 그득하고
유럽과 아시아가 뒤섞인 이국 풍경
어느새 이상한 나라 앨리스가 되어있다
교외의 넓은 벌엔 야생벼가 자라는데
이민 온 우리 선조 벼농사 짓던 흔적
유랑의 역사가 서린 신한촌에 비가 내린다
5
만주벌에서
진달래 언덕마다 열사비 우뚝한데
해동성국 말 달리던 선인들 간데없네
졸다가 눈을 떠보니 여전히 망망 옥토
석양에 반짝이는 광활한 옥수수밭
간도에 넓게 퍼져 다물의 꿈 심는 동포
언젠가 다시 찾으리 힘차게 말 달리리
6
대 초원의 길,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용맹한 스키타이 말 달리던 천산 자락
만년설 흘러내려 대초원 이루었네
이 땅을 누빈 자유인 네 이름은 카자흐
강제 이주 고려인 팽개쳐진 황야에도
산마다 고운 단풍 눈바람에 영근 사과
계절은 다시 찾아와 고향 소식 전하네
* 카자흐 :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란 뜻
키르기스스탄
눈인가 구름인가 천산의 저 만년설
아마도 신선경이 저곳이 아닐는지
일몰에 집 찾는 소 떼 한가롭기 그지없다
사회주의 실험으로 허덕이던 살림살이
소 말 양 떼를 보니 굶지는 않겠구나
말 타고 독수리 사냥 사는 낙이 쏠쏠하다
우즈베키스탄
한혈마 뛰어놀던 대월지 땅을 지나
육천 리 천산산맥 끝나는 곳을 향해
혜초가 걸었던 길을 천년 뒤에 내가 걷네
한 난류 교차하듯 동서가 만난 곳에
다민족 한데 얼려 문명의 꽃 찬란하다
거리에 넘치는 미인 눈을 둘 데가 없고
7
자유와 기회의 땅, 미국을 생각한다
(1)
곰들이 야생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새
산들은 밀밭 너머 지평선과 술래 잡네
스치는 얼굴만 봐도 지루할 틈이 없어
이력서에 피부색 적게 하면 벌금 물고
남녀 성별 결혼 여부 물어도 불법이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성공하는 기회의 땅
빈부차는 크지만 부자를 미워 않고
거의 모든 문명이기 여기서 비롯되어
세계의 지도국으로 초일류를 고수한다
버스에 장애인 안 태우면 범법이고
타인의 신체 결함 거론도 금기사항
소외된 곳도 챙기는 매너의 땅이라네
숲에서 딱따구리 나무를 쪼아대고
기화요초 만발한 천국 같은 전원 마을
부럽다, 잔디정원에서 아이들이 뛰노네!
(2)
6.25 때 꽃다운 이곳 청년 5만 명이
이름도 모르던 작은 나라에 와서
오로지 자유를 위해 한 줌 흙이 되었네
그들이 원조해준 강냉이로 연명하며
이만큼 경제 부국 이루어낸 우리 세대
안다리 거는 부류는 사람인가 금수인가
유사이래 존재한 강대국 가운데서
영토 욕심이 없는 거의 유일한 나라
욕하던 사람마저도 미국 소를 먹는다
급할 때 손 내밀어 줄 친구가 누구인가
좋은 친구 버리고 나쁜 친구 믿다가는
언젠가 주머니 털리고 목숨마저 털리지
자유와 창의성이 강물처럼 흐르고
다수든 소수파든 최대 행복 누리는 곳
보아라, 인류가 만든 더없는 유토피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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