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처우개선 첫걸음 계기 ‘이학만 사건’
[이달의 추모 경찰관] 8월, 故 심재호 경위·故 이재현 경장
건국 이후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경찰의 희생은 1만3000여명에 달하고 있다. 경찰청에서는 희생과 봉사의 경찰정신을 실천하고 순직한 경찰관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도록 매달 ‘이달의 추모경찰’을 선정하고 있다. 이에 공감코리아는 경찰청과 함께 ‘대한민국 경찰’이라는 사명 앞에 목숨을 던진 경찰관들이 국민들의 가슴 속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매월 ‘이달의 추모경찰’을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최근 한 소방관이 화재현장에서 순직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국민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쳐 봉사를 해야하는 최전방에 있는 직업인 경찰관, 소방관들에게 순직이란 숙명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이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8월 추모경찰은 경찰 내부에서 이러한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 계기를 만든 서울 서부경찰서 심재호 경위와 이재현 경장이 그 주인공이다.
故 심재호 경위(왼쪽)와 故 이재현 경장. |
2004년 8월 1일. 서울 서부서 강력반 심재호 경사와 이재현 순경이 폭력 피의자를 검거하러 간다.
심재호 경사는 경찰서에서 베테랑 강력반 형사로 손꼽히는 10년차 경찰관, 이재현 순경은 갓 시보를 끝냈지만 185cm의 체구에 선배들을 잘 따르면서 ‘타고난 강력반 형사’로 촉망받고 있었다.
피의자는 사귀던 여성을 폭행하고 도주했다가 서울 마포구의 한 커피숍에서 피해여성을 만나기로 약속한 상황이었다.
전과 10범에 달하는 인물이라 두 형사는 평소와 달리 삼단봉 등 경찰장구도 준비한 터였다. 저녁 9시, 피의자가 모습을 보였다. 심재호, 이재현 형사는 피의자에게 다가갔다. “경찰입니다” 신분증을 보이며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찰나 피의자가 갑자기 품속에서 칼을 꺼내 휘둘렀다.
심재호 경사의 가슴을 깊게 두 번, 쓰러지는 심 경사를 부여잡은 이재현 순경의 등을 다시 한 번. 이재현 순경은 칼에 찔린 몸으로도 피의자를 검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피의자를 바닥으로 제압하여 누르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호소했다.
당시 상황을 보도한 뉴스영상 화면. |
하지만 “도와주면 죽인다”는 서슬퍼런 피의자의 말에 아무도 달려들지 못했다. 그 사이 피의자는 이재현 순경을 아홉차례 찌르고는 쓰러진 이 순경을 밀치고 달아났다. 두 형사는 긴급히 후송됐으나 1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운명을 다했다.
2004년 8월, 두 명의 경찰관이 희생된 ‘이학만 사건’으로 인해 온 국민과 경찰이 분노와 비통함에 빠졌다. 경찰관의 목숨에 비해 턱없이 미미한 국가의 책임에 불같은 자성여론이 일었고 깊은 반성도 있었다.
당시 보상금은 故 심재호 경사 유족에게 1억 1000만원 故 이재현 순경 유족에게 4600여만원에 불과했다.
두 형사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지나 ‘위험직무 관련 순직 공무원의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경찰을 포함한 위험직무 중 순직한 공무원들에 대한 보상이 크게 확대됐다.
어려운 근무여건에서 묵묵히 일하는 수·형사 경찰관에 대한 처우개선의 첫 걸음으로 수사경과 창설이 이루어졌고 “권총은 던지는 용도로만 쓰는 것”이라는 경찰 안팎의 자조적인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필요시 총기를 적극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수칙을 개선하고 다양한 대체 장구도 도입됐다.
고된 근무 후에도 도서관을 찾아 공부를 이어가던 성실한 경찰관 심재호 경위, 고향의 아버지께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잘 하던 이재현 경장.
서울 서부경찰서 현관에 있는 故 심재호 경위·故 이재현 경장 추모상. |
서울 서부경찰서 현관에는 심재호 경위, 이재현 경장이 함께하고 있다. 두 사람은 떠났지만 이들의 경찰정신은 변함없는 ‘늠름한 형사’의 모습으로 경찰서를 드나드는 동료들에게 조용한 응원을 보내주고 있을 듯 하다.
참고로, ‘사이버 순직경찰추모관’에서 故 심재호 경위, 故 이재현 경장에게 추모의 글을 남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