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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에는 봄바람, 서에는 솔바람, 입에는 맛바람
입력 : 2014-04-04 12:27
조회수 : 1,013회

동에는 봄바람, 서에는 솔바람, 입에는 맛바람

[걷기여행] 경북 영덕 해파랑길 20코스

 

해맞이 등산로 입구에서 바라본 강구항.
해맞이 등산로 입구에서 바라본 강구항.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을 따라 걷는 길이다. 부산, 울산, 경주, 포항, 영덕, 울진, 삼척·동해, 강릉, 양양·속초, 고성까지 10구간으로 나뉜다. 각 구간은 몇 개 코스로 나눠지며, 총 50코스이다. 전체 길이는 무려 770킬로미터에 달한다. 경북 영덕 해파랑길은 5구간 4코스(19·20·21·22코스)로 총 64.6킬로미터이다. 도보 여행자의 걷기 시간으로 환산하면 약 22시간이 소요된다.

경북 영덕 해파랑길은 ‘영덕 블루로드’로 더 알려졌다. 영덕 블루로드 방향 안내판과 블루로드 리본을 따라서 걷는 게 수월하다. 해파랑길 19코스는 영덕 블루로드 D코스 ‘쪽빛 파도의 길’이다. 가장 늦게 만들어진 길은 남쪽 포항과 이어졌다. 20, 21, 22코스는 각각 A코스 ‘빛과 바람의 길’, B코스 ‘푸른 대게의 길’, C코스 목‘ 은사색의 길’ 순으로 이어진다.

A코스 ‘빛과 바람의 길’은 강구터미널에서 시작해 강구항을 둘러보고 고불봉(235미터) 정상을 올라 영덕군과 풍력발전단지를 조망한 뒤에 구불구불한 임도를 따라 풍력발전단지로 향한다. 다시 풍력발전단지에서 창포리로 내려와 바닷가 언덕길을 걷고, 파도 포말을 일으키는 해맞이공원에서 끝난다. 산과 바다, 그리고 항구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정겨운 길이다. 이 코스를 완주하려면 영덕으로 일찍 출발하는 게 좋다. 17.5킬로미터 거리도 거리지만 요즘은 대게, 홍게, 도다리 등 해산물이 제철이다. 당연히 발걸음이 더뎌진다.

강구항 ‘대게종가’에서 대게 스탬프 찍고 출발

블루로드 리본
블루로드 리본.

영덕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서 먼저 영덕군청을 찾았다. 군청 복도에는 블루로드 지도가 놓여 있다. 지도를 챙겨두면 출발점이나 종점에서 게 모양 스탬프를 받을 수 있다.

영덕시외버스터미널 주변 식당에서 도다리물회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서둘러 먹고 일어나 A코스 출발점인 강구로 가려는데 물회 맛에 반해 이야기가 길어진다.

영덕 전통 물회는 육수가 없는 게 특징이다. 먼저 참기름, 설탕, 깨, 파 등 양념을 가장 밑에 깔고 그 위에 오이, 배를 채 썰어올린다. 마지막으로 채 치듯 썬 잡어, 소라 등을 수북하게 올려놓는다. 집에서 담근 고추장을 한 숟가락 푹 넣고, 설탕을 녹일 정도의 맹물을 반 컵 못 되게 붓는다. 여름에는 얼음이 들어가기 때문에 물을 더 적게 붓는다. 이 맹물의 양이 맛을 좌우한다.

영덕 옛 가정식 물회 맛을 기억하며 오십천을 지나 강구항으로 들어선다. ‘대게종가’에서 대게 스탬프를 받았다. 동행한 친구가 스탬프를 받고 아이처럼 좋아한다.

영덕에 처음 온다는 친구와 함께 강구항을 천천히 돌아본다. 영덕 블루로드는 맛이 있는 길이다. 항구를 따라 100여 개의 대게 식당이 즐비하다. 몇몇 건물 외벽에 붙인 커다란 대게 장식이 상징적이다. 대게는 크기가 커서 대게가 아니라 몸통에서 뻗어나간 다리가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다고 해서 대게로 불린다. 영덕은 5월 말까지 대게 철이다. 요즘 대게는 살도 꽉 차고, 맛도 달고, 향도 좋다.

숙소도 찾을 겸 대게 가격을 물어보며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식당과 민박을 함께 하는 곳은 식사를 해야만 민박도 이용할 수 있다. 식당들이 밀집한 곳은 번잡한 것 같아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한다. 항구를 등지고 10여 분 걸었을까, 대게 식당과 숙소들이 보인다. 수족관 속의 대게가 두 눈을 바짝 세운다. 박달대게, 러시아 박달대게, 대게, 홍게 등 크기와 산지에 따라 다양하다. 영덕 박달대게는 집게 발가락에 노란 완장을 채웠는데, 이것은 강구항에서 인정한 박달대게다. 등껍질에 검은 딱지 같은 난낭이 붙어 있으면 국산 박달대게다. 러시아 대게는 등껍질에 산호가 붙었다. 영덕 박달대게 가격이 2배 이상 비싸다. 대게 살을 쏙쏙 빼먹는 즐거움에 장거리 버스 여행의 노곤함을 잊는다. 영덕 바다가 검어진다.

전날 스탬프 받은 ‘대게종가’에서 아침을 시작한다. 도로에 난 방향 표시를 보고 따라 걷는다. 황포식당 옆의 봉봉대게직판장 간판 밑으로 영덕 블루로드 지도 안내판과 해파랑길 안내판이 서 있다. 현란한 간판이 붙은 건물들을 뒤로 하고 조붓한 길로 들어선다. 생각해 보니 강구항은 여러 번 왔었지만, 항구 뒤편 마을은 처음이다.

해맞이공원 포장마차 오뎅은 대게로 국물을 낸다.
해맞이공원 포장마차 오뎅은 대게로 국물을 낸다.

대문 활짝 열린 집마다 빨랫줄엔 간재미·고등어

집들은 대문이 활짝 열려 있다. 최근 몇 년간 이렇게 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집을 보지 못했다. 도리어 내가 문을 닫아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 정도다. 어느 집은 건조대가 아닌 마당에서 오징어가 마른다. 지열로 마른 오징어 맛은 어떨까 상상하며 골목을 오른다. 박대, 도루묵이 꼬들꼬들 마르고 빨랫줄에 널린 간재미, 명태, 고등어에서 말간 기름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바닷가 아주머니들의 바지런한 손놀림이 골목 안에 가득하다.

집들을 기웃거리며 비탈진 언덕을 오른다. 언덕 모퉁이를 도니 꽃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천리향이 반긴다. 강구3리 정자 앞에는 강구항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뒤편은 흐드러지게 핀 매화꽃이 길을 안내한다.

영덕 블루로드 리본을 따라 산으로 향한다. 블루로드 쉼터 정자 앞으로 아스팔트 도로가 생겼다. 오른쪽 도로를 따라 50미터 내려가니 나무데크가 놓여 있다. 고불봉으로 가는 해맞이 등산로 입구다. 고불봉까지 7킬로미터다. 길은 솔 향이 은은하다. 소나무, 해송, 리기다소나무가 등산로를 따라 부드러운 그늘을 내린다.

소나무 그늘 사이로 진달래꽃이 피었다. 해풍의 영향인가, 꽃송이는 작은데 꽃잎 색은 짙은 홍자색이다. 친구와 함께 활짝 핀 진달래꽃을 하나씩 따 먹어본다. 서울이 고향인 친구는 진달래꽃을 처음 먹어본다고 했다. 꽃 한 송이 먹는 것이 화전놀이를 누리는 듯하다. 지나가는 나이 지긋한 현지인이 인사를 건넸다.

“좋은 시절입니다.”

군데군데 핀 진달래꽃은 이제 시작이다. 소나무 사이로 온통 진달래다. 영덕 대게축제가 열리는 4월 3일부터는 진달래꽃이 무리지어 피어 홍자색 물결을 선사하겠다. 맛과 눈요기라, 이 순간만은 좋은 시절이다.

고불봉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전체적으로 굴곡이 없이 무난하다. 누구나 무리 없이 걸을 수 있겠다. 숲이 눈에 익는다. 생강나무꽃도 보이고 사방오리꽃도 보인다. 친구는 떨어진 사방오리 수꽃차례가 벌레처럼 생겼단다. 우리 걸음은 점점 느려진다. 보는 것마다 참견하며 가고 있으니, 이제야 금진구름다리를 넘는다.

등산로는 쉼터가 군데군데 있어 쉬어 가기 좋다. 단, 식수는 없다. 미리 물과 도시락, 간식을 준비한다. 고불봉의 동서 풍경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동쪽의 풍력발전단지는 거대한 풍차 24기가 횡렬로 서 있다. 서쪽은 오십천과 영덕읍이 보인다.

고불봉으로 가는 등산로 숲길.
고불봉으로 가는 등산로 숲길.

풍력발전단지 전망대 뒤편까지는 너무 호젓한 임도

고불봉에서 하저리 방면 해맞이 등산로 입구는 1.3킬로미터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서 내려온 뒤에 야성폐차장 앞에서 환경자원관리센터로 이어지는 길을 올라야 한다. 등산로 입구에서 풍력발전단지 신재생에너지전시관까지 6.5킬로미터다. 환경자원관리센터부터 풍력발전단지 전망대 뒤편까지는 무척 호젓한 임도다.

이 길은 여자 단둘이서 걷기에는 위험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걷기를 권한다. 만약 여자끼리 걷는 중이라면 고불봉에서 영덕군청 방향으로 내려가서 버스를 타고 해맞이공원으로 이동하기를 권한다. 해맞이공원부터 풍력발전단지로 걷는 게 좋다.

우리는 지나가는 현지인의 도움으로 해맞이공원까지 이동했다. 해맞이공원 종점에서 역으로 걷는다.

창포말등대에서 풍력발전단지로 오른다. 거대한 풍차 너머 저만치 바다가 보인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았지만 가슴 안으로 푸른 바다가 꽉 차 오른다. 친구 눈동자에 푸른 바다가 가득하다. 우리 눈동자에 바다가 오래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운동화 끈을 다시 묶는다.

해맞이공원에 설치된 블루로드와 해파랑길 지도.
해맞이공원에 설치된 블루로드와 해파랑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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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김연미(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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