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다른 피부색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
[다문화·다인재·다재다능 대한민국] ③ 흑진주 삼남매와 김해성 목사
남들과 다른 나, 특별한 사람…인정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편견 극복
이제 더 이상 국내에서도 다문화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그러나 다문화가 진정 자리잡으려면 국내 인식이 개선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매해 다른 주제로 다문화가족 인식 개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다(多)문화·다(多)인재·다(多)재다능 대한민국’을 슬로건으로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우리사회의 인재다’라는 주제의 다문화자녀 성장을 위한 캠페인을 추진 중이다. 이들의 성장을 위해 어떠한 노력이 더해져야 할까? 정책브리핑에서는 다문화 인식 개선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 어떤 정책의 추진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저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남들과 다른 피부색과 머리카락은 제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에요.”
황도담(16) 양이 환하게 웃는다. 형광색 안경테에 제법 모양을 낸 옷차림이 영락없는 사춘기 여학생의 모습이다.
모델을 꿈꾸는 도담 양은 걸음걸이부터 남다르다. 아직 중학생이지만 지난해에는 패션쇼 무대에도 섰다. 얼마 전에는 여성가족부의 다문화가족 인식 개선 공익광고도 촬영했다.
황도담 양(오른쪽부터)과 막내 성연·둘째 용연군까지 삼남매가 한 자리에 모였다. |
“모델이라는 꿈을 꾸면서 힘든 것들을 극복할 수 있었어요.” 담담히 얘기하는 도담 양이지만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겪기 힘든 일들을 이미 많이 겪어서일까? 그녀는 애어른이 다 돼 있었다.
도담 양은 외항선원이었던 한국인 아버지와 가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족의 자녀. 아래로 한살, 세살 터울의 남동생들까지 둘 있는 다섯 식구는 가난했지만 단란했다. 이 가족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지난 2008년 어머니가 뇌출혈로 운명하면서부터. 2년 뒤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한국인 아버지-가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삼남매, 2010년 부모 모두 잃어
“친척 중에 아무도 우리를 기르겠다고 하는 분이 없었어요. 정말 막막하고 걱정스러웠어요.” 덩그러니 남겨진 삼남매에게 손을 내민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대부로 불리는 김해성 목사였다.
김 목사는 1980년대 도시빈민선교에 동참하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가족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도담 양 가족과는 어머니 장례를 치르면서 인연을 맺었다. 삼남매를 돌봐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선뜻 아빠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렇게 김 목사가 삼남매의 아빠가 된지 올해로 4년째다.
도담 양의 난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삼남매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단지 피부색이,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들을 만나면 어느 나라에서 왔냐, 한국어는 왜 이렇게 잘하냐 등의 질문을 던졌다. 삼남매는 이 모든 것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특히 첫째인 도담 양은 동생들보다 그런 시선과 차별을 더 일찍 겪어야했다.
도담 양이 자신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 차분히 설명하고 있다. |
“외국이었으면 우리 피부색이 조금 다르고 머리카락이 조금 다른 거 아무렇지도 않았을텐데 한국에서는 아니었어요.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궁금해하고 다들 신기해 하더라고요. 솔직히 그런 사람들의 시선이 힘들었어요.”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 결코 가볍지 않았던 사람들의 시선.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숱하게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김 목사에게 매달리곤 했다. 무단 결석도 밥 먹듯이 했다.
삼남매 덕분에 다문화가족 자녀들의 교육문제에도 눈을 뜨게 됐다는 김해성 목사는 지난 2012년 지구촌학교라는 이름의 초등 대안학교를 설립한다.
이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딸을 위해 중등 대안학교도 세운다. 지구촌학교는 다문화가족과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학교이다. 도담양과 둘째 용연군은 현재 이 곳에서 중학교 과정 수업을 받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 다문화라고 나뉘었을때 내가 한국인인가 다문화인가 혼란스러웠어요. 조언해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다 같은 한국인 아니예요? 왜 그렇게 나누는지 이해가 안돼요.” 아직도 도담 양에게 지난 시간은 회상하기 싫은 과거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남들과 달라서 특별한 나…인정하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며 편견 극복해
“장윤주 선배님이 저에게 그랬어요. 너는 동양과 서양의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다고. 한국에도 검은 피부의 모델이 한 명 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너스레를 떨 여유도 생겼다. “그 얘기를 듣고보니 내가 나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꿔야겠더라고요. 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꿈을 얘기할 때 도담 양은 그 어느 때 보다 반짝이고 진지하다.
도담 양의 두 남동생 용연 군과 성연 군도 누나를 닮아 개성이 넘친다. 둘째 용연 군은 지난해 개봉한 마이 리틀 히어로에서 주인공의 친구 역할을 맡아 배우로 데뷔도 했다. 지난 여름부터는 디즈니채널의 신기방기쇼에 주연급으로 출연하고 있다.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적은 없지만 끼가 넘친다. 촬영때마다 배운 것들을 노트에 꼼꼼히 기록해 두고 연습하면서 연기자의 꿈을 놓지 않고 있다. 막내 성연 군은 축구선수가 꿈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축구부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같은 다문화가족 출신인 포항 스틸러스의 강수일 선수가 롤모델이다.
김해성 목사와 삼남매가 환하게 웃으며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
숱한 위기들을 함께 넘으며 네 사람은 진짜 가족이 됐다. 사춘기 아들딸은 아빠에게 반항도 하고 투정도 부린다. 세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지만 세명이라서 보람도 크다는 김해성 목사.
“여행을 다녀왔는데 집 컴퓨터 화면에 아이들이 포스트잇을 가득 붙여놨더라고요. 그 안에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커서 큰 효도 할게요, 사랑해요. 이런 문구들을 써놨는데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꿈이 있어 어려움 이겨내는 원동력 돼…다른 다문화가족 자녀들 롤모델로 성장하길
김 목사는 여느 아빠와 별반 다르지 않다. 가장 기뻤을 때를 묻자 첫째 아이가 패션쇼 무대에 섰던 날, 둘째 아이 영화 개봉일, 막내가 볼 키즈로 월드컵 무대를 밟았던 날이 줄줄줄 나온다. 김해성 목사는 삼남매가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로 성장해 다른 다문화가족 자녀들의 롤모델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주위에 행복 전하는 행복 바이러스가 될래요(용연)”, “축구선수가 돼서 힘든 아이들 도와주고 싶어요. 왜나면 저도 힘들었던 적이 있었으니까요(성연)”, “일단 세계적인 모델이 되고 싶고요. 그 다음엔 한국과 가나에 아카데미를 설립해 후배들을 키우는 게 제 꿈이에요(도담)”
“주위에 행복 전하는 행복 바이러스가 될래요(용연)”, “축구선수가 돼서 힘든 아이들 도와주고 싶어요. 왜나면 저도 힘들었던 적이 있었으니까요(성연)”, “일단 세계적인 모델이 되고 싶고요. 그 다음엔 한국과 가나에 아카데미를 설립해 후배들을 키우는 게 제 꿈이에요(도담)”
앞으로도 이들의 삶에 어떤 난관이 찾아올 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처럼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가 있다면 삼남매의 미래에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