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다문화를 품다 다문화 한국을 품다
“큰절은 혼례, 제례 등 중요한 집안 행사 때나 집안 어른들게 하는 절입니다. 절을 할 때에는 자세가 중요해요. 먼저 남자는 왼손이 위로 오게,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오게 손을 포게 잡고 바로 서야 합니다.”
지난 8월 11일 저녁 8시 30분경 경북 영주시 순흥면의 한국선비문화수련원. 이곳에서는 ‘2012 다문화가정과 함께하는 종교문화캠프’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유복배례’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유복배례란 옛날 유생들이 입던 유복 입기와 사대 매기, 유건 쓰기 등을 배우고 의관을 갖춘 채 서 있는 자세와 앉아있기, 절하기 등을 익히는 선비문화수련원의 전통예절 배우기 프로그램이다.
한국종교연합(URI-Korea) 주최로 이날부터 1박2일간 안동·영주 일대에서 열린 다문화가정 종교문화캠프 행사에는 경기도 부천 지역 다문화가족 90여 명이 참가했다.
8월 11일 아침 버스를 타고 부천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출발한 일행은 경북 안동시 상아동의 월령교 인근에서 내려 안동찜닭으로 점심을 든 뒤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도산서원을 거쳐 한국선비문화수련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유복배례에 이어 다도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널찍한 한옥으로 지어진 선비문화수련원에서 하룻밤 한옥에서 잠드는 체험을 했다.
유복배례 체험장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의 레티란(26)씨는 “전에도 한복을 입어본 적 있지만, 이곳에서 제대로 옷고름 매는 방법을 배우고 보니 한복입기가 쉽게 느껴졌다”면서 참가자들과 서로 한복 입은 모습을 촬영해주기에 바빴다.
베트남에서 남편을 만나 2년간 연애하다 3년 반 전 남편과 결혼해 한국으로 건너왔다는 그는 “이번 행사에서 한국의 문화유산을 직접 보았고, 경상도가 산이 많은 지역이라는 것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어 좋았다”며 활짝 웃었다.
한옥에서 잠자는 것도 처음이라는 레티란씨는 아직 아이가 없다 보니 이번 행사 참가자들 중 유독 ‘공부’에 열성이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다문화가족들은 베트남 이외에 미국, 중국, 일본, 몽골, 태국,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필리핀, 우간다 등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출신국도 다양했다.
특히 캄보디아에서 온 멘 첸다(30)씨와 중국에서 온 오루나(31)씨는 시부모님까지 동행해 눈길을 끌었다. 멘 첸다씨는 “한글을 배우긴 하지만 한자는 배우지 못해 박물관에서 설명읽기가 꽤 어려웠다”라며 “모처럼 아들, 시부모님과 함께 멀리 나들이를 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유복배례와 다도체험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밤하늘의 별이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한옥의 널찍한 마당에서 마음껏 술래잡기, 달리기 놀이를 했다. 낮 동안 유교문화박물관에서는 진행강사가 아이들을 따로 맡아 삼강오륜, 측은지심, 시비지심 등 유교적 인성기르기에 대해 아이들 눈높이로 설명해주었다.
10회째 진행된 이번 종교문화캠프 참가자들은 행사 이틀째에는 부석사로 불교문화 답사를 다녀온뒤 다시 선비문화수련원으로 돌아와 천연염색을 배우기도 했다. 캠프 참가자들은 “다문화가정이란 공통분모를 가진 다른 가족들이 함께하는 캠프라서 좋았다"면서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으며, 이런 캠프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는 반응들이었다.
한국종교연합은 세계종교연합선도기구(URI)의 목적과 헌장정신을 우리나라에서 구현하기 위해 1999년 5월 창립된 비영리민간단체로, 종교 간의 차이를 존중하며 서로 연대해 세계평화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캠프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문화유적 강의를 했던 서지숙 강사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면 나이가 들수록 다른 나라 출신의 어머니와의 문화단절, 언어단절이 대화단절로 이어지는 모습을 볼 때가 많아 안타까웠다”며 “이러한 캠프가 모든 문제를 당장 해결하진 못해도 노력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라고 캠프의 의미를 설명했다.
한국종교연합의 명신옥 실장은 “이번 캠프는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여러 종교와 사회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한국문화에 대한 적응과 이해를 도우며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사회통합의 바탕을 넓히고자 마련됐다”며 “앞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나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제 몫을 해야 할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글과 사진ㆍ박경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