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 커플’, 한국 축구 대세로 뜬다
--기성용 중원 장악·구자철 리더십…브라질 월드컵 예선 ‘젊은 피’ 역할
[런던올림픽 결산] 한국 축구의 새 희망
한국 축구의 황금 세대가 탄생했다. 뛰어난 실력과 외모에 입담까지 갖춰 아이돌 스타 못지않은 인기다. 향후 한국 축구 10년을 책임질 선수들이다. 그 중심에는 절친 듀오 구자철과 기성용이 있다. 런던올림픽 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숙적 일본을 꺾고 메달까지 목에 걸며 거칠 것이 없다. 군 면제 혜택까지 받아 마음 편히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게 됐다.
구자철(맨 왼쪽)과 기성용(왼쪽 세번째)은 올림픽대표팀 내에서 가장 친한 친구 사이다. 두 선수는 뛰어난 기량과 리더십으로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도 활약을 예고하고 있다. |
실력 하나만 보고 구자철과 기성용을 ‘역대 최고’라고 평가하진 않는다. 팀을 이끄는 리더십은 과거 선수들에게 찾아보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들은 자신의 의사를 솔직하게 표현한다. 또 그라운드에서 실력을 증명한다.
구자철(23·아우크스부르크)은 싹싹하고 능청스럽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조리 있게 말한다. 일본을 꺾고 동메달을 딴 직후에도 흥분하지 않고 소감을 담담하게 말했다. 생방송을 즐기는 듯한 여유 넘치는 표정이었다. 홍명보 감독과 함께한 3년 6개월 내내 주장을 맡았던 이유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 팀에서는 정말 중요한 선수다”는 홍 감독의 말이 구자철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박지성 뛰어넘을 새로운 ‘캡틴’ 구자철
구자철은 천재보다 노력파에 가깝다. 보인정보산업고등학교 재학 당시에는 그를 데려갈 대학팀이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정해성 당시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의 눈에 띄어 겨우 K리그에 입성한 케이스다. 구자철은 “인정받고 싶었다. K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훈련을 쉰 날이 없다”고 말한다.
구자철의 진가는 2009년 프로 데뷔 3년 만에 주전 선수로 도약하며 빛을 발했다. 홍 감독도 그를 20세 이하(U-20) 대표팀에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해 7월 열린 수원컵에서 이집트 U-20팀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으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어렸지만 동료들과 화합을 이끄는 능력이 돋보였다고 판단한 홍 감독은 두 달 뒤 열린 이집트 U-20 월드컵에 구자철을 주장으로 선임했다. 구자철은 뛰어난 리더십으로 8강 진출의 일등공신이 됐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구자철은 주장 완장을 찼다. 와일드카드(23세 초과 선수) 선수들과 후배들의 가교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동메달에 그쳤지만, 구자철은 “우리 목표는 올림픽이다. 실망할 필요 없다”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구자철은 이제 올림픽대표팀을 넘어 국가대표팀의 중심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 한국 축구의 중심을 지켰던 박지성을 더는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구자철은 “월드컵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잡고 전진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기성용이 자신의 트위터에 구자철에게 애정어린 메시지를 남겼다. |
몸값이 금값… 거침없는 기성용의 질주
구자철과 올림픽대표팀에서 가장 절친한 기성용(23·셀틱)은 장난기 많은 소년이다. 짓궂은 농담을 좋아한다. 한마디로 대표팀의 ‘분위기 메이커’다. 하지만 그라운드에 들어가면 투사로 변한다. 거친 태클과 몸싸움은 이미 유럽 최고 수준이다. 거칠기로 소문난 스코틀랜드 리그에서도 ‘싸움닭’으로 통했다.
런던에서 기성용의 가치는 두 배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유럽 최고 선수들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특히 영국과 8강전에서는 중원에서 수비 역할을 하며 팀을 이끌었다. 이날 승부차기 5번 키커로 나선 것도 기성용이었다. 웬만한 강심장 아니면 차기 어려운 최종 키커다. 2002년 홍 감독이 스페인과 8강전에서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선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기성용은 늘 당당하다. 과거 자신을 비난하는 팬들을 향해 ‘답답하면 너네가 뛰든가’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건방지다’라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기성용은 이 모든 비난을 실력으로 극복했다. 기성용은 올림픽 기간에 한국 선수 중 가장 몸값이 치솟은 선수 중 한명이다. 런던 현지 언론도 이적 소식을 쏟아내고 있다. 이제 기성용이 팀을 선택할 정도 위치까지 올라온 모습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많은 선수들이 해외 명문팀에 진출했다. 박지성·이영표·설기현 등이 병역 혜택에 힘입어 유럽 시장을 개척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이제 런던의 용사들이 해외 진출의 신호탄을 쏠 차례다.
이미 유럽에서 뛰고 있는 구자철과 기성용에 이어 다른 선수들도 유럽 진출을 본격적으로 시도한다. 유럽 축구 중심 영국에서 열린 올림픽인 만큼 많은 스카우터가 경기장에 다녀갔다. 한국 선수 매력을 드러내기에 가장 좋을 시기다.
유럽 진출이 유력한 선수는 측면 수비수 윤석영(22·전남 드래곤즈)과 중앙 미드필더 박종우(23·부산 아이파크)다. 윤석영은 프리미어리그 우승팀 맨체스터 시티의 관심을 받고 있다. 아직 이적 가능성은 적지만 기분 좋은 소식이다. 이영표 이후 끊긴 초특급 측면 수비수 계보를 이을 선수로 평가받고 있어 기대가 크다.
박종우도 유럽 구단 입장에선 매력적인 카드다. 화려하진 않지만, 종종 나오는 날카로운 패스와 엄청난 활동량은 유럽에서 뛰고도 남을 수준이다.
한국 축구는 2011년 초 박지성이 국가대표팀을 떠난 이후로 침체기를 겪었다. 확실한 스타 선수 없이 표류했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박지성 복귀설’이 흘러나온 이유다. 하지만 이제는 박지성을 대체할만한 선수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한 18명의 선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눈빛은 다음 목표인 2014 브라질 월드컵을 향해 있다.
위클리공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