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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자, 주머니 속 가을을 만지작거리며…
입력 : 2012-10-20 13:22
조회수 : 1,282회

걷자, 주머니 속 가을을 만지작거리며…

[감성여행] 가을 강화 여행

가을에 즐길 수 있는 여행의 기술 가운데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산책’이다. 두 발이 대지를 꾹꾹 누르며 한 발, 두 발 앞으로 나아갈 때면 사색은 깊어지고 마음엔 여유가 생긴다. 완만한 능선을 자랑하는 마니산이 단풍 옷을 갈아입는 10월이다. 바다에 둘러싸인 강화도는 어느 곳이든 발길 닿는 대로 거닐기 좋다.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가 에워싸고 있는 강화도 연미정은 가을 산책을 나온 여행객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가 에워싸고 있는 강화도 연미정은 가을 산책을 나온 여행객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발길 닿는 대로 ‘가을 강화 여행’

강화도는 비록 작은 섬이지만 우리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이다. 단군왕검이 강화도 마니산 첨성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이 풍속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강화도는 예부터 하늘이 내려준 요새였다. 서해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인 데다, 적군이 배를 타고 쳐들어와도 서쪽과 남쪽에 갯벌이 많아 배가 닿기 힘들다. 게다가 북쪽은 한강과 예성강이 흘러내려 물길이 거칠어 이곳 물길을 모르면 접근하기 어렵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갯벌과 그물질을 하는 어부를 만날 수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갯벌과 그물질을 하는 어부를 만날 수 있다.
강화도 해안도로 걷기여행의 시작점은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바로 왼쪽에 위치한 강화역사박물관. 강화도의 역사와 문화를 알기 쉽게 전시한 곳이다. 강화역사박물관 위쪽에는 갑곶돈대가 있다. 이곳은 서울의 주요 방어기지인 동시에 외적이 침입했을 때 왕실이 피란했던 제일의 후보지다. 고려시대에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해 성곽과 군사시설을 강화했다. 또 고종 3년 프랑스군이 쳐들어온 곳이기도 하다. 역사가 말하듯 갑곶돈대는 강화의 가장 중요한 관문이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용진진과 광성보 덕진진이 해안도로에 서 있다. ‘돈대(墩臺)’는 강화해안도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예부터 외국 함대들과 격전을 치렀던 강화는 배수진을 치고 적을 막는 관문이 필요했다. 53개소의 크고 작은 돈대들은 섬 주위에 규칙적으로 분포되어 먼 바다 풍경까지 덤으로 즐길 수 있다.

강화역사박물관에서 광성보를 거쳐 초지진으로 이어지는 길은 왼쪽으로 갯벌이 펼쳐지고 구간별로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어 쉬엄쉬엄 걸으며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는 여행객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

해안도로 따라 옛 방어진지 돈대 펼쳐져

강화도에서 서울로 가는 방면에 있는 초지대교를 건너기 전 초지진이 있다. 초지진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조선의 효종이 구축한 요새이다. 그후 근대로 들어오면서 초지진에서는 외국과의 잦은 마찰이 빚어졌다. 당시 프랑스의 극동함대, 미국 로저스의 아세아 함대 및 일본 군함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인 장소로도 유명하다. 포대를 지키고 선 대포를 통해 그때의 전투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강화도는 고려시대 몽골, 거란족의 침입으로 고려 왕의 피란처가 되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병자호란, 근대에 프랑스 군함사건, 미군 군함사건, 운요호 사건 등 다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역사의 흔적을 품고 있다. 해안도로를 걸으며 근대화 과정의 전투와 왕족들의 피신처였던 강화도 구석구석을 확인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걸으면 이른바 강화도스타일의 교육여행도 겸할 수 있다.

장화리에서 바라본 강화도 노을 풍경. 선홍빛 노을빛이 마음을 흔든다.
장화리에서 바라본 강화도 노을 풍경. 선홍빛 노을빛이 마음을 흔든다.

가을의 화창한 날씨를 벗 삼아 걸으면 더욱 좋다. 보행자를 위한 전용도로가 닦여 있어 안전한 도보 여행이 가능하다. 해안도로는 2~3시간 정도 걷고 쉬기를 반복하며 완주할 수 있는데, 강화초지대교에서 출발해 초지진-덕진진-용진진-강화역사박물관 순으로 마무리된다.

해안도로를 산책하던 중 바다가 다소 물린다면, 오두돈대-화도돈대-용당돈대-좌강돈대-갑곶돈대 가운데 몇 곳에 올라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다.

고려 태조가 불교를 국교로 삼은 고려는 많은 불교 유적을 남기게 되었다. 불교의 문화는 이곳 강화도에도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난세에 불교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강화도의 절 전등사, 정수사 등은 여행객들이 특히 많이 찾는 곳이다. 유서 깊은 전등사는 1천6백년 불교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10여 분 걸어 올라가면, 장작 타들어가는 구수한 냄새와 함께 멀리 언덕 위로 기와지붕들이 띄엄띄엄 자리한다. 절은 그처럼 산의 초입에서 어미와 같은 마음으로 여행자들을 맞아준다.

삼랑성 내에 위치한 전등사는 사찰의 의미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의 역사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전등사 입구에서 보이는 삼랑성이 이곳의 역사를 이야기해준다. 삼랑성은 고조선시대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는데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지나며 막돌로 세운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되었다.

오랜 역사의 현장 전등사·마니산

전등사 외부로 이어진 성벽은 얕지만 가파른 산이라 밑에서 올라오는 적을 보며 포를 쏠 수 있도록 축조되었다. 성벽을 지나가자 전등사 대웅전이 나타났다. 전등사 대웅전 귀퉁이에는 사람 모습을 한 여인상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추녀상인데 전설에 따르면 절을 짓던 목수의 사랑을 배반하고 도망치는 여인을 조각했다고 한다.

곧게 뻗은 전나무 아래 멀리 서해 바다를 마주한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창건한 사찰로 대웅전, 약사전 등의 귀중한 보물을 거느리고 있다. 망울진 목련 가지에선 달달한 풀냄새가 맴돌고, 처마 밑을 스치는 바람에 풍경 소리는 은은함을 더한다. 사람도 여행지도 모두 평화로워지는 10월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가을날의 휴식을 맛볼 수 있다.

강화도를 상징하는 마니산은 해발 4백68미터의 완만한 산세로 2~3시간이면 오르내릴 수 있어 등산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다. 10월 마니산에는 단풍이 물든다. 등산로를 오르는 여행객들은 마니산의 단풍에 놀라고 정상에서는 단풍과 어울리는 서해를 보고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마니산 정상에 자리한 참성단은 사적 제136호로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이라 전해진다. 절벽 위에 자연석을 쌓아 만들었으며 민족의 뿌리와 세계관이 반영된 신성한 곳이다. 평상시에는 관광객들의 무분별한 훼손을 방지하고자 철망으로 길을 막고 있다가 개천절 날 이곳에서 단군의 제사를 지내며, 전국체전 때마다 7선녀에 의해 성화가 채화되어 대회장을 밝힐 성화를 가져온다. 1시간 코스로 계단으로 정비가 잘 되어 있어 가족과 함께 온 여행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강화산성 오솔길은 가을의 정취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강화산성 오솔길은 가을의 정취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강화산성에서 출발해 연미정으로 이어지는 강화산성 나들길은 걷기 좋은 코스다. 고려궁 일대를 보호하던 이 성곽은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에 맞서 고종이 수도를 강화로 옮기면서 축조되었다. 당시 고려 조정은 물과 익숙하지 않은 몽골에 맞서기 위해 강화도를 기점으로 몽골군과 항쟁을 하였다.

아픈 역사 간직한 고려궁·강화산성

고려시대에는 내성, 중성, 외성이 있었는데 그중 내성이 조선시대에 개축되면서 현재의 강화산성의 모습이 되었다. 약 3미터 높이의 성벽은 적과의 치열한 전쟁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전쟁의 고통, 슬픔, 그리고 치욕. 아픔의 역사를 간직한 강화산성을 보며 쓸쓸한 발걸음을 옮긴다.

고려시대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몽골군이 쳐들어왔다. 전면전에 불리함을 알고 있던 임금은 강화도로 피란해 39년간 몽골에 항쟁하였다. 고려궁지는 몽골전쟁 중 강화도로 피란했을 당시 임금님이 거처하던 임시 궁궐이다. 개성의 궁궐을 본떠 3년 만에 축조했지만 몽골과 화의 후 개성으로 천도한 뒤 허물어버렸다.

강화의 갯벌체험에 신이 난 아이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뛰어 다닌다.
강화의 갯벌체험에 신이 난 아이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뛰어 다닌다.

근대에 들어와서 고려궁지 내 외규장각에는 서적, 은궤, 지도 등 우리 역사의 매우 중요한 자료가 있었다. 그러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이곳의 국보급 자료를 약탈한 후 불태워버렸다. 고려의 왕이 살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궁터와 건물은 힘 없는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고려궁지와 용흥궁 등을 둘러본 후 강화산성 성곽을 따라 30분 정도 걷다보면 오읍약수터로 내려가는 길이 연결된다. 성곽에서 오읍약수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숲을 지나는 구간이어서 가만히 걷기만 해도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나들길이다.

글과 사진·유철상 (여행작가)

 

제공: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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