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돕는 일이 가장 좋은 힐링
입국안내·입장관리 등에 100명 참가… 발대식 참가만으로도 강한 동기부여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지적장애인들의 자원봉사
뇌병변 장애를 딛고 봉사의 달인으로 거듭난 김경운씨는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에도 자원봉사자로 참가해 외국선수들의 입국 안내를 맡게 됐다. |
꽁꽁 얼었던 날씨가 모처럼 풀렸던 지난 1월14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아이스링크 옆 공간에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을 알리는 포토존과 홍보 부스가 설치됐다. 길을 가던 시민들이 잠깐씩 발길을 멈추고 홍보자료를 살피거나 마스코트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자원봉사자 유니폼(노란색 조끼)을 입은 김경운(52·남·서울 노원구 월계동) 씨는 “장애인들만의 행사를 넘어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외국인선수단 입국 안내요원으로 배정받은 김씨는 이날 행사 이후 스페셜올림픽 개막일인 1월 29일 전후로 인천국제공항에서 활동하게 된다.
“저 말 잘하죠? 처음에는 이렇게 못했는데, 자원봉사를 다니면서 늘었어요. 잘하려고 연습도 많이 했거든요.”
씩씩한 말씨, 밝은 얼굴의 김씨는 언뜻 봐서는 전혀 장애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는 1988년 불의의 사고로 뇌수술을 받은 후 뇌의 3분의 1을 잃은 뇌병변 장애인이다. 자신이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장애인이 봉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김씨는 사고 후 한동안 말도 잘 못하고 거동이 불편해 집에서만 지냈다. 그런 김씨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한 자원봉사자가 그의 집을 찾아오면서부터다. 김씨는 그날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한 장애인행사에 참석해 처음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이후 기회가 될 때마다 자원봉사활동을 해왔다.
김씨의 언어능력이 부쩍 좋아진 데는 몇 년 전 지역 행사인 과천축제의 자원봉사활동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당시 축제에서 공연했던 한 연극 감독이 배우들의 발성연습을 따라하던 김씨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가 지적장애를 가진 자원봉사자임을 알고 감동한 감독이 발성훈련을 시켜줬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전에도 2002 한·일 월드컵, 2011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서울국제도서관·박물관대회 등 크고 작은 국제행사에서 활발하게 자원봉사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공로로 김씨는 10여 차례 상도 받았다. 2010년에는 MBC 주최 사회봉사대상 본상을 받기도 했다. 김씨는 이번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에 대한 기대가 컸다.
“장애인이 자원봉사를 하기에는 말만큼 쉽지 않아요. 스페셜올림픽은 장애인이 자원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스페셜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열려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더 좋아지면 좋겠습니다”
지적장애인 자원봉사자 중에는 주변의 권유로 참가한 이들도 있다. 박기욱(27·여·서울 노원구 공릉동) 씨가 그런 경우다. 박씨의 어머니 도정숙(53) 씨는 “내가 등을 떼밀다시피 했다”고 털어놓았다.
“복지관 선생님도 같이 격려해줬어요. 딸아이가 이번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시작은 소극적이었지만, 활동을 시작하자 완연히 태도가 달라졌다. 박씨는 지난해 11월 15일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자원봉사자 발대식에서 자원봉사자 여자대표로 선발돼 남자대표와 나란히 단상에 올랐다.
이 자리에는 김황식 국무총리, 나경원 조직위원장, 홍보대사 원더걸스, 자원봉사자 250명을 비롯해 300여 명이 참석했다. 박씨는 이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변의 걱정을 떨치고 당당하게 선언문을 낭독했다.
어머니 도씨는 “조금 떨기는 했지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잘한 편이었다. 무대에서 내려오고 나서 ‘엄마 나 안 떨었어’라고 묻더라”며 딸을 대견스러워했다.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자원봉사자 발대식에서 김황식 국무총리(왼쪽에서 두 번째), 나경원 조직위원장 사이에 서 있는 자원봉사자 박기욱 씨. |
이번 스페셜올림픽에서 박씨가 배정받은 역할은 경기장 입장관리다. 대회 기간 중 경기장 인근 용평의 자원봉사자 숙소에서 다른 지적장애인과 한 방을 쓰며 지내게 된다. 스페셜올림픽조직위에서는 복지관 교사 출신 보조교사를 배치해 이들이 어려움 없이 생활하도록 할 예정이다. 그래도 걱정되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선생님들께서 잘 보살펴 주실 테지만, 안 보면 걱정되니 봉사기간 동안 평창으로 오가기는 해야겠죠”
스페셜올림픽은 선수로 출전하지 않는 지적장애인들에게도 소중한 사회활동 체험의 장이 된다. 발달장애인을 전문인력으로 육성해 사회 진출을 돕는 호산나대 재학생들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다.
엄마 권유, 교사 독려 힘입어 “나도 한 몫”
김범준·송예은·오기석 등 1, 2학년생 11명을 이끌고 지도교사겸 자원봉사자로 참가하는 김권용(43·체육학과) 교수는 “장애인들의 사회활동은 사회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
발달장애 학생은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과 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낯선 사람이나 외부인이 있으면 위축되기도 한다”며 “외부활동으로 이를 극복하게 하고자 이번 행사에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치른 자원봉사자 발대식도 지적장애인 자원봉사자에게 강한 동기부여가 됐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발달장애 학생들은 스스로 재미를 느껴 뭔가를 적극적으로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번 자원봉사 발대식이 흥미 유발과 동기 부여가 된 것 같아요. 규모가 크고 볼거리와 부대행사가 다양한 데다 또래 친구들과 나란히 유니폼을 입으니까 자원봉사활동이 무엇인지 실감하는 분위기예요.”
전국에서 모집한 지적장애인 자원봉사자 100명은 입국안내·입장관리 등 위험요소가 없는 분야에 주로 배치돼 스페셜올림픽 개막일인 1월 29일 전후부터 본격 활동에 들어간다. 지적장애인 자원봉사자 8명당 1명의 보조교사가 도우미로 따라나서 이들의 활동을 지원한다.
[제공: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