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골로 말하겠다…믿고 기다려 주세요”
美 언론도 ‘월드컵에서 주목할 10인’ 선정…‘원샷원킬’ 본능, 원정 8강 ‘비장의 카드’
평가전에서의 잇따른 부진에도 국내외 축구 전문가들의 시선은 여전히 박주영의 ‘한 방’을 주시하고 있다. 본선에서 그는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을까. |
박주영(29)의 표정은 밝았다. 그답지 않게 말도 많았고, 후배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입가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결전지’ 브라질에 입성한 첫날인 12일(한국 시각) 우리나라의 ‘베이스캠프’인 브라질 이구아수에서의 첫 훈련장 풍경이다. 박주영은 최근 두차례 평가전에서 부진했다. 특히 0-4로 완패한 지난 10일 가나전에서는 원톱으로 나섰지만 후반 10분이 지나서야 첫 슈팅을 날렸다. 지난달 28일 튀니지전에 이은 2경기 연속 무득점이다. 마음이 침울할 법하지만 박주영은 반대로 활기차다. 그는 “분위기가 좋아야 회복도 빠르다. 훈련할 때는 화기애애 해야 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팀을 위해 의도적으로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주영은 이날 훈련 막바지에 슈팅 훈련을 자원해 잇따라 멋진 슛을 날렸다. 고참이 나서니 어린 선수들도 가만히 앉아있을 리 없었다. 박주영과 함께 기대주 손흥민(22·레버쿠젠)까지 슈팅훈련에 참여하자 팬들의 환호성이 이어지기도 했다.
사실 박주영은 소속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에선 버림받다시피했고, 임시 거처였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셀타 비고와 잉글랜드 2부 리그 왓포드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1년여 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지만 그는 지난 3월5일 그리스와의 평가전을 통해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다. 13개월 만에 태극마크를 달며 그리스와의 평가전에 나선 그는 월드컵 본선 무대 출전 여부가 걸린 갈림길에서 최전방 스트라이커로서 그의 실력이 ‘명불허전’임을 입증했다. 홍 감독의 선발 카드가 적중하기까진 불과 18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박주영은 전반 18분 손흥민이 띄워 준 전진 패스를 왼발로 받아 골문 구석을 정확하게 공략했다. 무려 28개월 만에 터뜨린 박주영의 A매치 통산 24번째 골이었다. 언론은 “역시 박주영”, “화련한 컴백” “월드컵 최종명단 승선 확실시” 등의 기사를 쏟아내며 찬사를 보냈다.
한국 축구의 ‘믿는 구석’…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
박주영의 브라질행은 시작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박주영은 시즌이 끝나지 않았지만 지긋지긋한 영국을 떠나 4월3일 조기 귀국했다. 어차피 오른쪽 발등의 세균성 피부 감염증도 치료해야 했다. 다행히 원소속팀 아스널과 임대됐던 왓포드도 그의 귀국에 협조했다. 대한축구협회는 국내에 소속팀이 없는 그가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NFC)에서 치료하고 훈련하도록 배려했다. 그러자 이번엔 ‘황제 훈련’ 논란에 휩싸였다. 월드컵 최종명단이 발표되기도 전에 특정선수에게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박주영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신다면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세간에 떠도는 언론 기피증에 대해서도 “언론에 비치는 것처럼 기자들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다”라며 “공식 인터뷰가 온다면 마다할 생각은 없다”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5월8일, 마침내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할 23명의 최종명단이 발표됐고, 박주영도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은 난처했다. “소속팀 출전 여부가 대표팀 선발의 기준”이라던 스스로의 말을 뒤지었기 때문이다. 그는 “선수 선발의 원칙을 깬 것은 맞다”고 시인했다. 홍명보 감독이 박주영을 얼마나 신뢰하는 지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박주영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2 런던올림픽을 함께 한 ‘홍명보의 아이들’ 중 핵심이다. 그리고 고비 때마다 홍명보호를 구한 것도 다름아닌 박주영이었다. 런던올림픽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 때 박주영은 선제 결승골을 넣었고, 그리스와의 평가전 직전까지 2연패에 빠졌던 홍명보호를 위기에서 건져낸 것도 박주영이었다. 게다가 박주영은 이번이 3회 연속 월드컵 출전으로 경험이 풍부하다. 원샷원킬 본능도 있다. 16강 진출 여부가 걸렸던 2010 남아공 월드컵 나이지리아와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프리킥 역전골로 대표팀의 16강을 이끌었다.
튀니지, 가나와의 잇단 평가전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박주영은 여전히 한국 축구의 ‘믿는 구석’이다. 중요한 순간마다 골을 터뜨려 대표팀의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박주영은 홍명보 감독의 축구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최전방에만 머물지 않고 전후좌우로 활발하게 움직인다. 상대 수비를 교란하면서 2선에서 침투할 공간을 열어 준다.
홍명보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이번 월드컵에서 그에게 등번호 10번을 선사했다. 월드컵 3회 연속으로 골잡이의 상징 번호를 부여받은 것이다. 평가전에서 낙제점을 받아들고 브라질에 입성했지만 미국 서부지역 유력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월드컵에서 주목해야 할 10명의 슈퍼스타에 박주영을 포함시켰다. 아시아 선수 중에선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美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선정 ‘월드컵에서 주목할 10인’에 이름을 올린 박주영(맨 왼쪽)이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웨인 루니(잉글랜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
박주영은 최근 이런 말을 했다. “공격수이기 때문에 중요한 순간에 골을 넣어 팀에 도움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 골잡이는 골로 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