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에서.
오늘,
그대가 나를 살며시 포옹하던 그날처럼
정선엔 초록색 봄비가 내립니다.
그대 고운 품에 느껴지던 따스한 사랑이 아직 내 가슴에 남아있는데
사랑하는 그대는 봄비처럼 살며시 왔다 안개처럼 소리 없이 멀어져 갔습니다.
빗속에 홀로 걷는 정선의 굴곡진 도로와 굽이진 계곡처럼
한 많은 삶을 살고 갔을 그대가 그리워
초록의 정선을 또 찾아 걸어봅니다.
그대를,
그리다 지쳐 토한 한숨은 구름이 되어 계곡에 머물고
님을 보내며 구비마다 흘린 눈물은 한겹한겹 파랗게 쌓여 흐를 줄 모르고
그리운 님과 그리워질 내 사랑을 함께 흘려보내면 초록은 어느새 짙게 물들어가고
그리움이 닳아 잊혀져간 사람과 잊혀져갈 사람을 생각하면 봄비는 어느새 초록으로 변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당신께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고
당신의 망각 속에 나를 묻으며 나 또한 망각 속에 사랑과 님을 함께 묻고
봄비 속에 흩어지는 꽃잎처럼 님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속 깊이 흩어 놓으며
오늘도 나는 무심히 흐르는 세월만 탓하고 있습니다.
세월은,
또다른 봄으로 언제나 내 곁에 조용히 다가오지만
오늘의 그리움이 어제만 못한 것은
내 삶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는 이유인가 가봅니다.
사랑하는 님을 그리며 내 짧은 생을 마감하는 날
정선의 굴곡진 산길처럼 뒤돌아보아도 볼 수 없는 그리움과 한을 남기고 어찌 돌아 눕겠습니까
오늘도,
봄비 속에 홀로 걷는 이름 모를 계곡에서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하루가 되길 꿈으로 그려봅니다.
초록이 물드는 정선의 품속에서 그대를 마음속 깊이 품고 내 삶도 다시 출발하려합니다.
내 생이 내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그 날까지 그대를 그리며 살겠습니다.
1997년 5월 비오는 정선에서,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