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구룡령을 넘어 남대천에 흘러…가버린다
가을은 구룡령을 넘어 남대천에 흘러…가버린다[명상여행] 강원도 양양
양양의 가을은 설악산·오대산의 붉은 단풍이 주연이다. 아침 이슬에 젖은 낙엽들은 모닥불을 피워올린 듯 알싸한 향기를 뿜어낸다. 무르익은 양양 땅에 운치를 더하는 살가운 조연들도 있다. 사연이 깃든 고개, 마을, 계곡은 가을 정취를 호젓하게 덧칠한다.
강원도 양양 구룡령은 한적한 가을 산책이 어울린다. 양양의 고개 중 고요함이 깃든 사색의 고개다. 최근 한계령이나 미시령이 번잡해진 것은 오히려 다행이다. 구룡령은 예전 태백산맥 넘어 영서·영동을 잇는 주요 통로였던 관록을 지닌 고개다. 구룡령 고갯길에는 서민들의 매우 어려웠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길을 따라 등짐장수들은 홍천의 농산물과 양양의 해산물을 짊어지고 다니며 소문과 사연을 함께 전했다.
아홉 마리의 용이 갈천약수에서 목을 축이기 위해 고개를 구불구불 넘어갔다고 해 구룡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구룡령과 나란히 이어지는 옛길은 문화재청이 명승 29호로 지정한 문화재길이기도 하다. 구룡령 초입의 갈천산촌학교에는 코스모스와 함께 길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4킬로미터 남짓한 숲길은 백두대간으로 뻗어 있고 하산길은 갈천약수 방향으로 연결된다. 갈천약수로 향하는 산책로에는 소나무숲과 계곡이 가지런하다. 철분이 함유된 갈천약수는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갈천리는 예로부터 칡으로도 유명한 고장이었다.
구룡령으로 향하는 56번 국도변에는 ‘추억의 마을’이 애틋한 사연을 전한다. 송천 떡마을은 추수가 끝날 때쯤이면 고소한 맛과 지난한 과거로 발길을 붙드는 곳이다. 송천 떡마을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 일이다.
삶의 질곡 서린 송천 떡마을, 이젠 체험마을로
당시 송천리 아낙네들이 오색약수터 등 관광지에 산나물이나 옥수수와 함께 인절미를 내다팔던 게 입소문이 나면서 떡마을도 함께 알려졌다. 송천마을 주민에게 떡은 어려웠던 시절을 함께한 한숨과 희망의 덩어리다. 그네들은 가난을 털어내려고 처음 떡바구니를 머리에 이었고 짓무른 손으로 새벽이면 고개를 넘어 떡을 팔러 다녔다.
떡마을 새벽 연기에는 설움 가득한 인절미의 추억이 묻어 있다. 송천 떡마을은 마을 옆으로 송천계곡 물줄기가 흐르고,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는 아담한 풍경이다. 송천리라는 명칭도 하천 가운데 송림이 울창하고 계곡을 끼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가난이 추억이 된 떡마을은 그동안 많이 변했다. 최근에는 송천리 떡집이 유명해지면서 체험마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이나 부산 등지에서 떡을 주문하기도 한다.
양양읍내를 벗어나 법수치로 향하는 길에는 호젓한 계곡이 반긴다. 연어가 오른다는 남대천 상류는 어성전, 법수치로 이어진다. 어성전은 물고기가 성과 밭을 이룰 정도로 많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곳은 바다에서 귀향한 황어나 은어를 낚으려는 플라이 낚시꾼들의 아지트였다.
법수치는 가을이면 호젓한 절경과 함께 한적한 휴식처로 다시 태어난다. 법수치로 오르는 10킬로미터의 계곡길에는 이제 아담한 펜션들이 자리 잡고 있다. 도시인의 웅성거림이 사라진 가을밤, 계곡물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의 향연은 진한 감동이다. 법수치는 불가의 법문처럼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는데, 불가에서 예를 올릴 때 이곳 맑은 물을 떠갔다고 한다. 오대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법수치계곡에는 아직도 꺽지, 산천어 등이 서식한다.
숲과 계곡을 뒤로하면 양양의 바다다. 양양의 남쪽 끝단에 있는 남애항은 양양의 포구 중 가장 아름다운 항구로 손꼽히는 곳이다. 남애항 언덕에 자리 잡은 소나무가 이곳의 상징이며 남애항과 남애 해변에서는 영화 <고래사냥>의 주인공들이 모래사장을 뛰어가는 마지막 장면이 촬영되기도 했다. 포구 끝자락에는 양양의 이정표인 송이등대가 들어서 있다.
남애항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오르면 양양의 명소 해변들이 연이어 모습을 드러낸다. 양양의 바다를 제대로 조망하는 곳으로 하조대, 의상대 등을 빼놓을 수 없다. 한적하고 광활한 바다가 인상적인 하조대 해변을 에돌아 오르면 하조대와 하조대등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닷가 의상대·하조대에도 ‘가을 흠뻑’
파도 소리, 불경 소리가 어우러진 절경은 의상대에서 정점을 찍는다. 낙산사의 절벽에 기대선 의상대는 사찰과 낙산 해변을 아우른 풍경으로 연중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2005년 화재로 소실된 낙산사는 복원이 완료됐다.
단풍산과 함께 백두대간에 기댄 양양의 가을을 더욱 향긋하게 단장하는 게 오동통한 송이들이다. 최적의 자연에서 자라는 양양 송이는 영양이 풍부하고 맛과 향이 좋아 ‘황금송이’로 불린다. 이웃 일본에서 전세기를 이용해 양양으로 별미여행을 나설 정도다. 송이 수확철에는 양양읍내 오일장도 들썩거린다. 양양 오일장은 영동지방에서 가장 큰 전통장으로 인근 시골에서 생산되는 각종 특산물이 쏟아져 나온다. 4, 9일장으로 남대천 하류에 장이 서 가을 정취를 더욱 따사롭게 단장한다.
글과 사진·서영진(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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