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식품 맛있고 안전…거기다 이젠 가격까지?”
“한국 농식품 맛있고 안전…거기다 이젠 가격까지?”[한국 농식품, 13억 입맛을 사로잡아라] ① 현지에서 확인한 가능성
맛의 전장터 베이징…FTA로 가격경쟁력까지 갖추면 위상·인기 날개 달 듯
한·중 FTA가 실질적으로 타결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타결 직후에는 농수산계에서 반발과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FTA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대중국 수출 확대로 한·중 FTA가 오히려 우리 농수산계의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확산되고 있다. 정책브리핑이 중국 현지 취재를 통해 우리 농식품의 중국 내 위상과 발전 가능성을 직접 확인해봤다. 또한 중국 내수시장 진출 확대를 위해 필요한 우리 정부와 관련 업계의 전략과 지원방안 등을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알아봤다.(편집자 주)
중국 출장을 가며 ‘가설은 대담하게, 실증은 세심하게’라는 근대 중국의 석학 후스(胡適)의 연구방법을 취재에 차용하기로 했다.
이 방법에 맞게 취재진이 내건 가설은 ‘한·중 FTA는 우리 농수산식품계의 대박이다’ 이었다. 가설은 거창하게 세웠지만 과연 취재라는 실증을 통해 이 가설을 ‘사실’로 입증할 수 있을까? 사실은 그런 마음이었다.
일단 사전 취재를 통해 한·중 FTA, 특히 농축수산식품(농식품) 분야는 우리가 훨씬 유리하게 체결됐다는 내용을 확인했다. 쌀, 육류, 채소양념류 등 중국산 수입시 피해가 예상되는 대다수 품목은 수입 빗장을 단단히 건 반면, 수출경쟁력이 있는 음료나 식품 등에서는 중국측의 관세 및 비관세장벽이 철폐된다는 것이었다.
11월 26일 중국에 도착해 첫 방문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베이징 지사에서도 이런 평가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필형 지사장은 “한국 일각에서 한·중FTA로 농식품계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현지에서 바라본 시각은 정반대”라고 잘라 말했다.
이 지사장은 오히려 농업 분야만 보면 한·중 FTA는 장고 끝에 ‘신수’라는 상찬도 아까지 않았다. 이 지사장의 자세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생각 한편에서는 정말 그럴까하는 일말의 의심도 없지 않았다. 하늘을 나는 것 중에는 비행기만, 네 발 달린 것 중에는 책상만 먹지 않는다는 중국인의 상상초월 입맛을 우리가 과연 사로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회의적인 생각이 바뀌는데는 불과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이튿날 방문한 제1회 베이징식품박람회에서 한국 농식품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미국, 독일, 호주, 아르헨티나 등 전세계 26개국에서 700여개 식품업체가 참여한 베이징식품박람회는 13억 중국시장의 중심에서 펼쳐지는 소리없는 맛의 전장터였다. 그리고 이런 맛의 대결에서 우리 식품들의 위상과 인기는 선진 제국을 능가하면 능가했지 전혀 밀리지 않았다.
글로벌 식품기업인 네슬레, 폰테라 등이 참가한 외국관과 달리 한국관은 서울우유 외에 이렇다할 대기업은 보이지 않았지만 방문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박람회장 중앙 출입구 앞 ‘명당’에 자리한 한국관 aT 부스는 방문객의 발길을 잡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다. 그 중 베이징의 한식당 ‘창작’ 조리팀이 진행한 한식 조리 과정 시연과 시식 코너는 중국인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았다.
쓱쓱 몇번의 손놀림에 순식간에 잡채가 만들어지고, 김밥이 썰어지자 관객들은 탄상을 자아냈다. 그리고 제육볶음과 떡볶이의 매콤한 향이 퍼지며 현지인들의 방문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떡볶이 시식 때에는 남녀노소 모두 몰리며 중국과는 다른 한국 특유의 매운맛을 즐기는 장면이 포착됐다.
시식만 아니라 직접 물건을 구매하는 현장이 확인됐다. 두유 판매 코너에서 만난 무용과 대학생 단니씨(베이징무도학원)는 “한국에 다녀온 이후 한국 식품을 좋아하게 됐다”며 “한국 식품을 사러 일부러 이곳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손에는 보기에도 묵직한 한국 두유세트가 들려져 있었다.
일반 소비자외에 바이어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그중 과일농축음료 제조업체인 한미에프쓰리 부스를 방문한 현지 식품연구소의 마린 연구원은 “한국 음료가 중국 음료에 비해 맛도 좋고 제품군이 다양하다”며 “FTA 관세 철폐 이후 가격경쟁력까지 갖춘다면 상당한 인기를 누릴 것”이라며 한참을 시식했다.
이같은 한국의 맛은 박람회같은 실내나 일부에만 한정돼 있는 것은 아니었다. 쓰촨(사천)요리, 광둥(광동)요리, 후난(호남)요리와 함께 중국 4대 요리의 본거지인 베이징에는 한국의 맛이 빠르게 퍼져가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베이징의 왕징거리다. 한인타운으로 일반 한식당 외에 해물탕, 베이커리, 포장마차, 호프집, 심지어는 떡복이·어묵을 파는 간식점 등이 성황리에 영업하고 있다. 찾는 손님 역시 한국인외에 중국인도 상당수다.
비단 식당뿐이 아니다. 식품점도 이미 주택가까지 깊숙이 진출했다. 자금성 북쪽 대서양신청에 위치한 한국식품점 ‘낙원식품’이 대표적이다.
40평 규모로 한국의 소규모 슈퍼와 비슷한 이곳에서 한국 식품을 무려 1800여가지나 팔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 인기좋은 유자차나 신선우유, 건강식품 이외에도 드링크류, 육류, 과자류 등 판매품목은 한국보다 오히려 다양해보였다.
사장인 중국동포 홍동일씨는 “하루 매출이 300만~350만원 정도 된다”며 “처음에는 주변 한국인을 보고 장사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중국인들의 방문이 늘고 있다”고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이어 “현지 중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식품은 맛이 좋고, 품질이 좋으며,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관세철폐로 가격이 낮아지면 판매가 더 늘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홍씨 뒤로 비친 한국 사탕을 손에 든 중국인 노인의 모습은 낙원식품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저녁, 현지식을 먹은 뒤 입가심을 하러 다시 왕징거리를 찾았다. 때마침 상가 1층에 ‘황진투즈(황금토끼)’라는 분식집이 보였다. 급한 마음에 빨리 떡볶이와 어묵을 사려는데 손님들이 밀려 줄을 서야했다. 한국인인가 봤더니 중국인 가족들이었다.
장세영 황진투즈 사장은 “중국인 손님 중 절반은 맛을 알아, 또 나머지 절반은 호기심에 떡볶이와 오뎅, 튀김을 찾고 있다”고 현재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어 프랜차이즈 확대를 생각 중이라며 자신의 상표와 디자인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베이징은 중국에서 가장 잘 사는 곳은 아니지만, 가장 자존심이 강한 지역이다. 이 자존심에 요리도 포함된 것은 물론이다.
이 자존심 강한 2000만 베이징인들이 한국음식과 식품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한국농식품계에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박람회장에서 만난 조일호 주중 한국대사관 농무관(참사관)은 최근 중국을 방문한 우리 농민단체들이 현장을 살펴본뒤 “이 정도면 우리 농식품계가 해볼 수 있다. 희망이 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고 했다.
이처럼 우리 농식품이 13억 중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게 중국을 방문한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렇다면 그 가능성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해답의 실마리는 역시 중국에 있고 그것을 찾아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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