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에 있는 이한우(54) 씨의 축산농장에서 육군 9사단 장병들이 방역복을 입고 건초와 사료포대 등을 나르고 있다. 이 농장은 지난달 29일 젖소 58마리가 구제역 의심축으로 판정받아 살처분됐다. 사후조치로 이날 오염물질 처리작업이 진행 중이다. |
◇ 이한우 씨의 젖소들은 농장에서 200m 떨어진 곳에 매몰됐다. 이곳에는 인근 농가에서 살처분된 소까지 합쳐 110여 마리가 묻혔다. |
6일 오전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 젖소 58마리를 사육해온 이한우(54) 씨 농장에는 가축 대신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만 분주히 오갔다. 이날 490평 규모의 농장에선 가축 살처분 이후 조치인 오염물질 제거작업이 한창이었다.
파주연천축협 직원의 지시 아래 육군 9사단 장병 10명이 작업에 투입됐다. 이들은 건초와 사료포대 등 구제역 오염물질을 수거해 논밭에서 태웠다. 중형 불도저 한 대는 농장바닥에 쌓인 분뇨를 모아 석회에 섞어 소독하고 있었다.
농장에서 200여m 떨어진 공터에는 넓은 매몰지가 있었다. 메탄가스를 빼내기 위해 관(管) 여러 개가 매몰지 아래로 꽂혀 있었다. 이씨의 젖소들은 지난달 29일 이곳에 묻혔다. 인근 이기표(55) 씨의 젖소 58마리도 함께 매몰됐다. 10여개 축산농가가 모여 있는 금승리에서 지난달 말 농가 3곳이 구제역 탓에 키우던 소들을 잃었다.
“28일이었나. 소젖을 짜는데 젖꼭지에서 물집이 보이더라고요. 침도 흘리고요. 바로 신고했죠. 노심초사했는데 와서들 검사하더니 구제역이라고…”
살처분 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이씨의 얼굴은 눈에 띄게 핼쑥했다. 18년 전부터 이씨는 소를 키웠다. 10년 동안 키운 소도 이번에 살처분됐다. “망연자실하다”는 말을 그는 반복했다. 이번 구제역으로 이씨는 2억원이 넘는 손해를 봤다. 그는 구제역이 종식된 뒤 다시 소를 키울지는 생각해봐야 할 거 같다고 했다. “생계가 막막해요. 정부가 생계지원대책을 잘 마련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마침 이날 이씨 농장에서 벌어지는 사후관리 작업을 옆 농장주인 이기표 씨가 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이씨의 소들도 29일 구제역 의심축으로 판정받아 살처분됐다. 이씨는 하루 꼬박 걸린 매몰작업을 차마 볼 수 없어 현장에서 떠나 있었다. “어떻게 그걸 봐요. 자식 같은 소를 묻는데…….” 그는 자식을 지키지 못한 죄인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파주시에선 5일 기준으로 214개 농가에서 키우던 한우 4792두, 젖소 4261두, 돼지 10만9728두 등 총 11만9314두가 살처분됐다. 도내 살처분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수치다. 법원읍에 있는 한 축산농장의 모습. 구제역에 전염되지 않은 건강한 젖소들이다. |
◇ 파주시내 한 이동통제초소에서 대형버스에 소독약이 뿌려지고 있다. 파주시에선 현재 이동통제소 30곳이 가동되고 있다. |
◇ 지난달 15일 구제역 발생 후 6일까지 파주시 방역현장에는 공무원 6493명, 군인·경찰 5484명 등 1만8674명이 동원됐다. 하루 200여명의 공무원이 살처분과 통제초소 근무 등에 투입되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파주시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홍승표 파주시 부시장의 주재 하에 대책회의가 열리고 있다. |
파주시에선 지난달 15일 구제역이 첫 발생해 현재까지 농장 3곳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예방적 살처분과 의심축 살처분까지 해서 5일 기준으로 214개 농가에서 키우던 한우 4792두, 젖소 4261두, 돼지 10만9728두 등 총 11만9314두가 살처분됐다.
이는 경기도내 살처분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수치로, 구제역이 발생한 도내 17개 시·군 중 파주시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총 피해액만 1천억원이 넘을 것으로 시는 추산한다. 구제역 발생 전까지 파주시내 총 사육두수는 14만9140두였다. 이 가운데 73% 가량이 땅에 묻힘으로써 파주시 축산업 기반이 무너지게 생겼다.
파주시가 다른 지역보다 큰 피해를 입은 이유로는 도시개발로 교통망이 발달돼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유중근 파주시 축산팀장은 “교통망이 세세하게 구축돼 있어 차량이동에 의한 오염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아 구제역이 빨리 전파된 거 같다”고 설명한다.
피해 규모가 크다보니 구제역 방역에 동원되는 인력 규모도 상당하다. 구제역 발생 후 6일까지 공무원 6493명, 군인·경찰 5484명 등 1만8674명이 동원됐다. 하루 200여명의 공무원이 살처분과 통제초소 근무 등에 투입되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14명은 크고작은 부상을 입기도 했다.
홍승표 파주시 부시장은 “방역장비에 손가락이 절단되거나, 사후처리 중 부탄가스가 터져 화상을 입은 직원들도 있다. 살처분에 나섰던 한 직원은 모친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도 작업장 분위기가 흐트러질 수 있다며 끝까지 작업에 참여했는데 다음날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말았다”며 직원들의 노고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부상당한 파주시청 공무원들은 오히려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강추위에 살처분 작업에 나섰다가 신종플루와 늑막염에 걸려 현재 병가 중인 파주시 환경보전과 전채원 씨(여·37·환경8급)는 “두 차례 살처분 작업에 참여했었다. 그 후유증으로 귀에서 소 울음소리가 이명으로 들리는 등 정신적으로 힘들다”면서도 “동료들이 다 고생하는데 이렇게 쉬고 있는 게 너무 죄송하다. 며칠 뒤 복귀하면 당연히 방역현장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파주시내 구제역 확산은 다소 정체된 분위기다. 지난달 24일부터 29일까지 예방백신 접종이 마무리돼 차츰 효과를 발휘하고 있고, 무엇보다 축산농가 대부분이 피해를 입을 만큼 입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구제역 공포는 여전하다. 6일에도 13개 농가의 소·돼지 2974두가 살처분됐다. 유중근 축산팀장은 “지금은 답이 없다. 가축 방역을 잘하고, 구제역이 끝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구제역 광풍이 쉽게 가시지 않는 와중에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에 있는 이승렬(53)씨 농장에서 1월 1일 송아지가 태어났다. |
◇ 6일 파주연천축협동물병원의 김희원(남·51) 공수의가 이 송아지에 구제역 예방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
죽음이 있으면 탄생도 있는 법. 가축 집단매몰 현장에서도 이러한 진리는 통한다. 구제역 광풍이 쉽게 가시지 않는 가운데 이날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에 있는 이승렬(53)씨 농장에서는 1월 1일 태어난 송아지에게 구제역 예방백신이 접종됐다.
이씨가 키우는 젖소 100여 마리는 구제역에 전염되지 않았다. 6년 전 소부루셀라병 때문에 큰 피해를 봤다는 이씨는 “누구보다 사육장 소독과 방역에 힘을 쏟고 있다”면서도 “송아지를 얻어 기쁘기보단 걱정이 앞선다”고 속내를 밝혔다. “하늘의 뜻이겠지. (가축소독에) 최선을 다했는데도 (구제역에) 걸리면 어쩌겠어.”
그러자 이날 이씨의 송아지에 백신을 접종한 파주연천축협동물병원의 김희원(남·51) 공수의가 쓴소리를 했다.
“구제역이 왜 하늘의 뜻이에요? 사람이 잘못해서 발생한 인재(人災)인데. 기자님, 이 말은 꼭 기사에 써주세요. 미국, 캐나다 선진국에선 구제역이 발병하지 않아요. 왜일까요? 가축방역이나 사육할 때 정한 원칙을 준수하기 때문이에요. 톱밥과 소독약 등을 잘 지원해 사육장을 깨끗이 하고, 가축들의 활동공간도 넓히는 등 축산환경을 개선하면 구제역 같은 전염병이 발 붙이지 못해요. 정부가 이 점을 꼭 상기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