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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옥창열/시조시인. 수필가.
1
몽돌
땅덩이 부글부글 끓을 때 튕겨 올라
억겁의 세월 동안 씻기고 쓸리다가
이렇게 정 맞을 일 없는 돌멩이가 되었다
마늘은 찧지만 담벼락은 쌓지 못해
난 입이 없지만 그래서 더 오래 살지
욕해도 침을 뱉어도 화낼 줄 모르니까
2
능파대
동해의 푸른 물 넘실대는 추암 해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촛대바위
해금강 방불케 하는 석회암 기암괴석
부서지는 흰 파도는 미인의 걸음인 듯
떠오르던 붉은 해가 촛대 위에 걸렸어라
재사들 혼을 빼앗는 해상 선경 여기로세
흰 포말과 파도 소리 가마우지 벗을 삼아
억만년 세월 건너 두근대는 가슴 안고
능파대 전망대에서 망부석 되어본다
3
누에섬 가는 길
바다가 하루 두 번 뒷걸음 칠 때마다
모세의 기적처럼 물이 둘로 갈라지고
널따란 갯벌이 드러나 누에섬에 갈 수 있다
풍력발전 날개는 게으르게 돌아가고
바람에 날린 모래 물결무늬 새겨놓고
바다를 갈라놀 기세로 숨가쁘게 달린다
갯벌은 검은 맨살 수줍게 드러낸 채
달랑게 칠게 무리 가슴에 품고 앉아
가쁜 숨 몰아쉬면서 헛구역질 하고 있다
바닷길 건너가서 무인도에 다다르면
홀로 세월 낚던 등대지기 아저씨가
아무나 붙들고 서서 세상 소식 묻는다
4
연화도
한 마리 휘파람새 봄빛을 물어오니
포근한 양털 운해 허리에 휘감고서
태곳적 그리움 삭이며 먼 하늘 쳐다보네
소매 걷고 바지 걷고 연화봉에 오르니
통영팔경 용머리 발아래 누워있고
눈부신 쪽빛 바다는 우리 임만 같아라
5
거금도
소록도 옆에 끼고 거금대교를 건넌다
파성재 올라서서 다도해를 굽어보니
해풍이 가슴속 체증 시원하게 쓸어가네
나지막한 적대봉 한달음에 올라서니
비구름 휘몰려와 산새들 깃을 접고
우리 님 즐겨 먹던 회 녹동항에 지천이다
6
이작도
고독에 지친 섬이 같이 놀자 손짓하면
나래 쉰 갈매기들 뱃전을 박차올라
점점이 박힌 섬 새로 숨바꼭질 여념 없고
대해를 헤엄치던 크고 작은 이작도가
부리를 맞대고서 하트를 그리는 곳
몽돌에 감기는 파도 나직이 울고 있다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십 리 풀등
자그만 파도에도 휩쓸릴 듯 애처롭고
샤워를 마친 조개가 고운 자태 뽐내네
장승들 무리 지어 경계 서는 섬 언덕
열아홉 섬 색시 눈물짓던 나무 아래
너울이 호젓한 자유 만끽하며 춤을 추고
저물녘 붉은 노을 온 섬을 사른 뒤에
길 잃은 민어가 꾸륵꾸륵 울어대면
외로운 길손의 밤이 하얗게 깊어간다
7
백령도
허름한 어촌 풍경 낯설지 않은데
물 건너 북녘땅이 두 손에 잡힐 듯
헐벗은 동포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한 쌍의 가마우지 목을 빼어 인사하는
두무진 기암절벽 시루떡을 쌓은 듯
진정코 신의 손길로 빚어낸 걸작인가
심청각 올라서서 인당수를 바라보니
심청이 물 밖으로 올라올 것만 같은데
해안에 늘어선 포문은 긴장감을 더하고
천안함 피격현장 굽어보는 언덕엔
산화한 용사들의 위령탑 우뚝 솟아
그날의 분노 되살리며 아픈 사연 전하네
8
바닷바람 거센 농장에서
하늘과 바다가 온통 푸른 그곳에
친구가 땀 흘리며 심어놓은 나무들이
쉼 없이 바람에 흔들리며 근육을 단련한다
밭둑엔 꼬부랑 새싹들이 자라는데
비빔밥에 빠지면 서운한 고사리다
아무리 꺾고 꺾어도 금세 또 올라온다
은행나무를 심고 벚꽃을 가꾸고
새의 아름다운 날갯짓을 구경하며
친구는 여유를 찾아 자유인이 되었다
준다는 느낌도 없이 사랑을 베풀고
받는다는 느낌도 없이 안식을 얻는 곳
그곳이 친구가 일군 바닷가 농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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