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50 회
AI 수필 낭송/옥창열
소작농으로 어렵게 살던 농민에게 논은 신앙이었다. 농지개혁으로 지주들 땅을 소작농에게 불하할 때, 우리 집도 논 열다섯 마지기를 불하받았다. 아버지가 스무 살에 도일渡日하여 13년간 뼈 빠지게 노동하여 버신 돈을 지불하고서다.
그 논에 온 가족이 달라붙어 벼농사를 지었는데, 어머니는 모내기 전날이면 달밤에도 새벽에도 나가서 모를 찌셨다. 가세가 기울어 다섯 마지기를 내놓자 원매자願買者가 왔는데, 어머니가 못 판다고 악다구니하시던 정경이 선하다.
모를 내는 날은 손이 많이 필요해 온 가족이 동원되는 건 물론이고, 이웃끼리 서로 품앗이를 해준다. 내가 초등학교를 보통보다 일 년 늦은 아홉 살에 들어간 것도 모낼 때 동생을 볼 사람이 없어 그랬다고 한다.
남자들이 써레질해서 못단을 안배해주면 모는 주로 여자들이 심는데, 숙련되면 모를 떼서 보드라운 질흙에다 꽂아 넣는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르다. 모를 심으려면 허리를 구부려야 하는데, 농사일을 안 하던 사람은 허리가 끊어진다.
충청도에서 갓 시집온 형수는 모내기가 얼마나 힘든데 여자들이 하느냐며 질색했다. 충청도에서는 남자들이 모를 심고, 여자들은 점심을 해다 나른단다. 제주도는 한술 더 떠서 남자는 애를 보고, 여자가 물질도 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는데, 남쪽으로 올수록 여자를 부려 먹는 모양이다.
벼가 자라는 동안, 아버지는 매일 아침 긴 대나무 삽을 어깨에 메고 물꼬를 보러 가셨다. 산 아래 찬물이 유입되는 논은 물길을 빙빙 돌려 데워진 물이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그래야 벼가 잘 자란다. 비가 오는 날은 띠를 엮어 만든 도롱이를 쓰고 논물이 넘치지 않게 물꼬를 넓게 터 준다.
벼가 안착할 무렵, 강낭콩을 넣고 밀가루떡을 쪄서 용신에게 풍년을 빌고는 논두렁 여기저기에 꽂아놓는데, 아이들이 돌아다니며 그걸 빼 먹는다. 안 그러면 배고픈 새들이 와서 논두렁에 심은 콩과 함께 해치우는 수가 있다.
한가위가 다가오면 올벼를 추수해서 햅쌀밥을 하고 송편을 빚어 조상님께 올리는데, 이맘때쯤 황금 들판에는 메뚜기가 창궐한다. 잠깐이면 한 바가지 수북하게 잡는데, 아이들의 훌륭한 간식이다. 요즘은 농약을 하도 쳐서 거의 사라졌는데, 술집 가면 별미 안주로 볶은 메뚜기가 나온다고 한다.
이 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기가 있었다. 봄이면 되풀이되는 보릿고개를 넘어서기 위해 정부도 피나는 노력을 했다. 우리 정보요원들은 동남아에서 금수품이던 볍씨 종자를 밀수하여 곡수가 많은 통일벼 개발에 기여했고, 면서기들은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통일벼를 파종하라고 다그쳤다.
우리 집은 논이 많지 않아서 식구가 먹는 용도로 벼를 재배했기 때문에, 찰지고 맛이 좋은 아케바레란 품종만 심었다. 모판에 볍씨를 뿌리기 전에 며칠 물에다 담그는데, 그때 면서기들이 들이닥쳐 강제로 통일 볍씨를 물통에 쏟아붓고 간 적도 있다.
밀주 단속에 학생들 도시락 검사도 하고 보리가 건강에 좋다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치다가, 쌀을 자급하게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쑥 들어갔다. 실제, 밥을 해놔도 떡이나 술을 해놔도 쌀은 어느 곡물보다 우수하다. 서양인의 주식인 밀은 신발 벗고 뛰어도 따라오지 못한다.
다음 동영상
총의견 수 0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 후 이용가능합니다.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