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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열
술은 불이나 칼과 같다. 유용하지만 자칫 해악을 불러올 위험성이 상존한다. 술이 없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반면에 술 때문에 일어나는 잘못은 또 얼마나 많은가.
세계 최장수라는 프랑스 할머니는 매일 포도주 한 잔을 마신다고 했다.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좋은 것이다. 다만, 지나치면 알코올이 분해될 때 수분을 빼앗아 노화가 빨라지고, 간에서 중성지방으로 변해 성인병을 부른다.
변영로의 수필집 『명정酩酊 40년』에 보면, 여름날 친구 집에서 대취해서 자다가 소피를 보고 다시 들어간다는 게 친구 부인이 자는 방으로 기어들어 갔다. 다행히 그 부인이 현명해서 소란 피우지 않고 넘어갔다 한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평생 힘들게 막걸리 빚는 걸 보았다. 밀을 빻아 누룩을 만들고, 쌀을 꼬들꼬들 쪄서 말린 후에 누룩과 섞어서 따뜻한 방구석에 두면, 발효되어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온다.
어머니는 그렇게 빚은 막걸리를 들일 나가시는 아버지 지게에다 한 주전자 매달아 주셨다. 농부들은 힘든 농사일을 하다가 막걸리 한잔하는 게 낙이었다. 쌀이 귀하던 시절에는 그나마 나라에서 술 빚는 걸 금했지만, 타성이 있어서 몰래 빚어 먹고는 했다.
나는 대학 시절, 고시 공부를 하느라 일부러 술 담배를 멀리했다. 술을 배운 것은 취직 후 선배들을 따라 점심을 먹으러 다니면서였다. 주는 잔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쓴 소주가 점점 달게 느껴졌다.
내가 원래 술을 못하는 체질은 아니다. 아버지나 형들 모두 애주가였다. 나는 단지 공부 때문에 술을 삼갔다. 가정환경이 남보다 어려웠기 때문에 남과 똑같이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우리 업무가 대통령경호실과도 관련이 있어서 매년 한두 번씩 같이 회식을 했는데, 식사 후에는 관례처럼 꼭 폭탄주를 돌렸다. 한 번은, 그쪽 책임자가 약을 먹고 있어 술을 못한다며 미리 양해를 구했는데, 우리 직원이 억지로 폭탄주를 돌리자, 화가 났는지 경쟁적으로 마구 돌려서 덩달아 혼이 났다.
폭탄주는 잔을 비우고 그다음 사람에게 넘겨야 하기 때문에 안 마실 수가 없다. 내가 모시던 분은 박카스만 마셔도 취하는 분이었는데, 청와대 회의에 가서 대통령이 권하는 잔을 어쩔 수 없이 마셨다가 들것에 실려 나온 적이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폭탄주를 강제로 돌리는 악습이 사라졌다. 공공장소 금연이 부지불식간에 정착된 것과 비슷하다. 우리 사회가 선진화되고, 의식 수준이 높아진 결과가 아닌가 한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 제3 수필집 『워낭소리의 추억』(2021년)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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