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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열/수필가, 시조 시인
금년 설에는 집에서 푹 쉬었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만 해도 명절에는 불원천리(不遠千里) 찾아가 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찾아가 뵈올 분도 안 계시다. 명절이면 고속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해 부산서 귀경하는 데 19시간 걸린 적도 있는데, 그런 고생도 아련한 추억이 되고 말았다.
한동안 명절 차례를 영월 큰형댁에서 지내다가, 형제들이 각지에 흩어져 사는 데다 사위들이 찾아오므로 각자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 부모님 생전에는 한 자리에 모였는데, 다 돌아가시고 나니 구심점이 사라져 저절로 뜸해졌다.
제사도 나 어릴 때는 명절 차례 빼고 일 년에 일곱 번씩 지내느라 어머니 허리가 휘었는데, 부모님 돌아가시고는 조부모님 제사 합쳐서 한 번, 부모님 제사 합쳐서 한 번, 이렇게 일 년에 딱 두 번만 큰형댁에 모여서 지낸다. 제사를 지내는 시간도 원래는 돌아가시기 전날 낮에 음식을 장만해서 자시(子時, 밤 11시~1시 사이)에 지내야 하는 것을 그냥 초저녁에 지내버리고 만다. 처음에는 이래도 되나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신문을 보니, 지난 추석에 해외여행객이 30% 급증했는데, 특히 5060 세대의 증가 현상이 뚜렷하다고 한다. 제사를 해외여행 가서 지내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다. 제사음식도 택배로 배달받아 지내는가 하면, 심지어는 인터넷 제사를 지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편에서는 여전히 미풍양속의 변질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고, 주부들의 명절증후군 이야기가 아직도 코미디나 대담프로의 단골 소재가 되고 있다.
옛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제삿날은 천상에서의 생일과 같은 것이었다.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며, 지상에서의 죽음은 천상에서의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벌초를 다니면서 들은 이야기인데, 귀신의 서열은 무조건 죽는 순서대로 매겨지므로 무덤의 위치도 순서대로 아래로 내려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들이 먼저 죽고 아버지가 뒤에 죽으면 아들 무덤 아래에 아버지의 무덤을 만든다. 생전 서열과 사후 서열이 달라지는 셈이다.
또한, 제사는 전통적으로 4대조(고조부모)까지만 지냈는데, 그 이유는 사람의 영혼과 육체 속에 깃든 혼백(魂魄)의 파장이 4대 120년 정도 유지되어서 자기 후손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라고 한다.
귀신 서열이니 혼백 파장이니 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되긴 어렵고, 어쨌거나 오랜 세월 우리의 의식구조를 지배해온 관념인 건 사실이다. 이러한 관념에서 출발하여 조상신을 받드는 제사문화가 발달하게 된 것 같다.
고대사회의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나 환생도 모두 조상숭배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심지어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지 못 하게 하고 예수 한 사람만 예배하도록 가르치는 기독교조차도 조상숭배 종교일 뿐이라는 주장이 있다.
19세기 영국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는 “모든 종교의 뿌리는 조상숭배이며, 모든 신은 조상신”이라고 했다. 유대인들이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 곧 야훼도 알고 보면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며, 계보를 따져 올라가면 야훼도 결국 유대인들의 조상신일 뿐이라는 것이다.
신약성서의 첫 구절은 예수의 족보로부터 시작하는데, 예수 또한 조상신의 확고한 대열에 끼어야만 그 권위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결국 예수에 대한 제사요, 예배인 셈이다.
충효사상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 아시아 유교문화권에서는 제사가 충과 효를 실천하는 중요한 의식으로 정착되었다. 특히, 직계 조상신에 대한 제사는 중국 상나라 24대 왕 조갑(祖甲) 때 정통성 확보와 권력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장려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후대의 주나라와 공자시대를 거치면서 체계화되었다. 무한한 복종을 뜻하는 효사상은 그대로 군주에 대한 충성으로 이어지며, 제사는 그러한 윤리를 실천하고 교화하며 사회를 통합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려 말까지 모두 불교식의 제례를 지내다가 조선조에 이르러 주자가례(朱子家禮)를 퍼뜨리고자 종전의 불교식은 억압하고 지금의 제사를 강요하게 되었다.
한국인은 이 제사를 통해서 조상의 덕을 추모하면서 자신의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의 효를 실천해 왔고, 자신도 후손들을 통해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을 추구했다. 또한, 조상신의 가호를 기원하면서 자신도 가문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이러한 순기능적인 측면을 오롯이 고려한다 치더라도 제사는 출발부터 위정자의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시작된, 가당찮은 우상숭배 문화라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
비싼 돈 들여서 죽은 조상 이름이나 사진 앞에 온갖 음식을 잔뜩 차려놨는데 조상이 밥을 먹고 간 적이 있는가? 밥그릇이 빈 적이 있는가? 죽은 조상이 제사상에 다녀갔다는 증거가 수천 년래 단 한 건이라도 있었던가 말이다.
수천 년 전의 유습을 그대로 유지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중일 3국 중에 제사 문화가 아직도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건 한국뿐이라는 말도 있다. 정작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는, 명절이면 제사보다도 친척들이 모여 큰 식당 예약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긴다고 한다.
언론사에서 한중일 3국 국민의 의식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우리가 중국보다 더 보수적인 유교적 가치관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를 잇기 위해 아들이 필요하다는 물음에 대해 긍정하는 비율이 한국 38%, 중국 19%였다. 장남이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물음에 대해서는 한국 60%, 중국 28%였다고 한다.
유교식 제사도 이제 과감히 허례허식을 버리고 국민과 국가에 유익한 쪽으로 전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가족이 모이면 누군가의 희생으로 누군가는 앉아서 먹고 노는 게 아니라 가족 성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그런 풍습으로 바꾸어야 한다. 삼년상이니 일년상이니 하는 장례문화가 시대에 맞지 않아 저절로 폐기되었듯이, 제사풍습도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
* 제2 수필집 『앎이란 무엇인가 2』(2019년)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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