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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열
예전에 시골에서 잠시 독학할 때, 사주를 비롯하여 성명학, 관상학 등 역리학 책을 여러 권 읽은 후 가족과 이웃 친구의 사주를 봐주기도 했는데, 잘 맞질 않았다. ‘장수가 되어 천하를 호령한다.’는 고모는 몸이 약해 맨날 골골대고, ‘과거에 장원급제한다.’는 친구는 학교 성적이 끝에서 1, 2등을 다투니….
그런데 사주는 좋게 이야기하다가 꼭 마지막에는 ‘하지만 흉성이 운명에 들어오면 복이 변하여 화가 될 수도 있다.’라고 하고, 나쁘게 이야기하다가도 마지막에는 ‘복성이 운명에 들어오면 화가 변하여 복이 될 수도 있다.’라는 식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인간의 운명이란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뜻하는 사주(四柱), 즉 시간적 요소만 가지고 결정되는 건 아니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일시에 태어났더라도 태어난 나라나 집안, 시대 등 환경적 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른 조건이 좀 시원찮더라도 귀인을 만나서 운이 필 수도 있다. 예전에는, 여자는 남편 만나기 나름이라며 남편 사주를 따라가니까 여자 사주는 볼 필요가 없다는 말도 있었다. 귀인을 만나는 것조차 완전히 우연에 의한 것일 수가 있고, 불교의 인과론에 의하면 과거에 착한 업을 쌓아서 그럴 수도 있다.
궁합이란 것도 남녀의 성장환경, 주변 인물, 성격과 경제적 능력 등 결혼생활의 성공을 좌우하는 변수가 너무 많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배우자를 골라야지. 사주만 가지고 단세포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성명학에서는 한자의 획수를 따져서 음양오행설과 결합하여 길흉화복을 점치는데, 과학적으로 믿기 어렵다. 서양사람 이름 중에는 생텍쥐페리니 프로우동이니 바쿠닌이니, 한자 획수를 따질 수 없는 별 희한한 이름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뭐라고 해야 할지….
수상이나 관상은 잘만 보면 좀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손금도 평생 조금씩 변한다고 하고, 얼굴도 형편이 좋아지고 나빠짐에 따라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서양에서는 태어난 달에 따라 12개의 별자리를 가지고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점성술이 있는데, 나는 산양좌에 해당한다. 설명을 죽 읽어보면, 맞는 것도 있고 틀리는 것도 있다. 70억이 넘는 인류의 성격과 운명을 12가지로 대분류해 놓은 것인데, 글쎄 그게 얼마나 정확할까? 통계를 보면, 12개 별자리마다 파스퇴르,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링컨 등등 유명한 사람들이 다 있다. 그러니 어느 별자리가 꼭 더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한겨울에 태어나는 사람은 푸성귀가 귀해 비타민 섭취가 어렵고, 그래서 성격 형성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 있는데, 이것도 옛날이야기고 요즘은 비닐하우스를 해서 한겨울에도 푸성귀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태어날 당시의 별자리 위치에 따른 중력작용으로 어느 정도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도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성격 형성이란 게 그런 시간적 요소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혈액형도 앞서 이야기한 사주나 점성술과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혈액형에 따른 성격의 일정 패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성장환경, 교육 수준, 사회적 지위, 경제적 능력, 정치이념 체제, 주변 사람의 영향 등에 따라서 변화무쌍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모 케이블 TV에서 혈액형과 성격에 대해 다각적으로 조명하여 방영했는데, 혈액형별로 특징적인 성격이 있다는 통념이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실험해 증명했다. 아울러 혈액형에 맞는 직업이라든가 궁합이란 것도 사실과 동떨어진 것이란 점을 통계적으로 분명히 밝혔다.
혈액형이 모두 다른 사람들로 구성된 어느 실험그룹에서 모두 같은 혈액형 설명지를 본인들 것이라며 나누어주었더니 전원이 자기 성격을 거의 정확하게 맞추었다며 놀라워하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부정적인 성격 항목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조금씩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그와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 했다.
따라서 혈액형이란 것은 사주나 점성술 등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참고사항일 뿐이며, 재미로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혈액형과 사주가 같아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인죄를 짓고 감방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성격과 재능은 제각기 장단점이 있는데,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직업을 택하여 얼마나 열심히 자기 계발에 정진하느냐에 관건이 있지 않을까.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변수 중에는 임의로 선택하거나 바꿀 수 없는 종속변수가 엄존하지만, 적극적인 의지와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독립변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 첫 수필집 『앎이란 무엇인가』(2015년)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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