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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열
* 대마도가 우리 땅이란 주장을 하는 유튜브 방송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설마 일부러 반일 감정을 부추기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요. 어디서 우리에게 유리한 정보만 골라 듣고서 애국심으로 그러는 것 같은데, 가뜩이나 어려운 한일관계를 더 악화시킬 것 같아요. 저가 공부한 결과로는, 대마도를 우리 땅이란 주장은 무리라는 확신이 들어서, 수필집에 실었던 제 글로 유튜브를 만들었습니다.
독도 모임 회장하는 친구 덕분에 그 모임의 고문이란 감투를 쓰고 있다. 그 바람에, 자연히 영토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에서 우경화 바람이 불면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떠들자, 인터넷에서는 독도문제에서 나아가 대마도까지 우리 땅이라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대마도와 가까운 부산과 마산에서는 대마도 영토회복을 위한 시민모임이 생겨났고, 괴산과 의정부 지방의회가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는가 하면, 국회에 대마도 연구모임이 결성되는 등 경향 각지에서 대마도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나도 처음에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읽고는 ‘대마도가 정말 우리 땅이구나!’ 하는 생각에 친구에게 제의하여 독도 카페 안에 대마도 방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온 자료들은 한결같이 우리 입장에서 유리한 자료들만 모아놓은 것이어서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일본 측 주장이나 중립적인 제3국의 시각이 궁금했다.
그래서 한일 양국 학자들이 쓴 역사서를 보이는 대로 구입하여 읽고, 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각자의 주장과 논리를 비교 검토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 들어가 대마도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일본에서 외교관으로 오래 근무한 친구의 의견도 들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공부를 하면 할수록 대마도가 일본 땅이란 사실이 확연해져 놀랐다. 나는 대마도가 우리 땅이란 증거를 찾으려고 한 것인데 그 반대의 결과가 되어버렸다.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정통 사학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대개 어중간히 연구한 재야 사학자와 극우파가 무작정 목소리를 높이는 현상도 감지되었다. 아전인수 격으로 몇 가지 우리에게 유리한 증거는 신줏단지 모시듯 하고, 수많은 불리한 증거에는 눈을 감아서야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생각이 정리되자, 우선 독도모임 회장 하는 친구에게 “조선왕조실록에 ‘일본국 대마도’란 표현이 80여 회나 나온다.”고 하면서 관련 자료를 보여주었는데, 짐짓 놀라면서도 회장이란 직함 때문인지 “우리에게 유리한 증거도 있다.”면서 몹시 난감해했다. 작년에 경기도의원에 나갔다가 떨어진 후 한일 관계사를 더 깊이 연구한다며 모 대학 박사과정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 친구인데, 한순간에 신념을 무너뜨리는 말을 하자니 쉽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의 입장을 생각해서 독도 카페에서는 내 의견을 밝히지 않고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런데 최근 어느 문단 밴드에 부쩍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자료가 많이 올라와서 가뜩이나 안 좋은 한일관계가 더욱 악화할 것만 같아 댓글로 내 의견을 밝혔더니, 친일파 같다는 둥 국가관이 의심스럽다는 둥 인신공격적인 반응이 나와 당황스러웠다. 알고 보니, 그곳에 대마도 모임 회장이 있었다.
이왕 말을 꺼낸 걸 피하기도 그래서 그분에게 조목조목 설명하였는데, 그분은 자기주장만 계속할 뿐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해봤자 입만 아픈 상황이라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문단 카페에 비슷한 자료들이 계속하여 올라왔다. 또 친일파 소리를 들을까 봐 자제하고 있었는데, 주위에서 내 의견을 물어온 분도 계시고 하여 이참에 대마도 영유권 문제를 정리해 보기로 하였다.
이혼소송처럼 첨예한 다툼이 있는 재판의 경우, 원고와 피고의 주장이 완전히 다른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어느 일방의 주장만 들어서는 진위를 분별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대마도 문제가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우리가 수많은 반대증거에 눈을 감고, 과장되거나 왜곡된 근거를 가지고 영토 문제에 접근한다면 일본에 왜 제국주의를 찬양하고 역사 왜곡을 하느냐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런 식이면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는 커녕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우선,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때 가장 많이 거론하는 근거가 이종무 장군의 대마도 정벌이다. 세종 때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를 정벌하여 확실히 우리 땅으로 만들었다는 주장인데, 거짓이다. 이종무는 대마도에 쳐들어가서 고작 열흘 남짓 머물렀는데, 초전에 기습으로 약간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일부 병력을 내륙으로 진입시키다가 궤멸한 후로는 이렇다 할 전투를 치르지 않았고, 대마도주가 직접 나와 항복을 한 적도 없었으며, 편지로 좋은 말 몇 마디 하니 감독관이나 군사를 남겨두지도 않고 그대로 철수해 버렸다. 이종무는 귀환 후 영웅 대접을 받았으나 사흘 만에 실상이 드러나 탄핵을 받았고, 국가적 체면상 유야무야된 게 바로 역사적 진실이다.
세종 원년에 상왕이었던 태종도 대마도를 원래 우리 땅이라고 말했다며 무슨 다른 소리를 하느냐고 하는데, 이것은 대마도의 영유권을 논하는데 별반 영양가가 없는 말이다. 대마도는 원래 우리가 개척한 땅이 맞지만, 고려 중기 이후 왜구의 발호로 공도정책을 써서 섬 주민을 본토로 소개한 틈에 왜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일본 땅이 되어버린 것이다.
역사적으로, 만주 대륙의 부여계가 신흥 고구려 세력에 밀려 남하하여 백제와 가야지역을 점령하였고, 한반도 내 격변 과정에서 이들 세력이 일본열도로 건너가면서 대마도가 중간 기착지가 되었으며, 일본에 정착한 이후에도 이들은 대마도 쪽과 계속 연계하고 있었다. 대마도는 거리상 우리와 더 가까우니 우리 쪽과도 다리를 걸치면서 고려와 조선에서 벼슬을 받기도 하고 양다리를 걸치다 보니 오해가 생겼다. 다시 말하면, 대마도에 본래 정착한 주민이 우리 땅에서 건너갔으니 우리로서는 우리 땅이고, 일본으로서는 한반도를 통해 건너온 자신들의 선조가 처음 기착했던 곳이니 자기네 땅이라고 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중국 사서인 삼국지 위지 왜인전에는 대마도가 3세기 일본의 야마 대국에 예속된 것으로 나오고, 일본 사서인 고사기에는 대마도가 아예 자기들 건국 탄생 무대라고 써놓았다. 대마도에 가면 신화 상의 일본 건국 시조 신사가 세워져 있는데, 다섯 개의 문이 바다 쪽으로 늘어서서 가야지역을 바라보는 것이 원래 그들이 출발한 곳을 가리키는 것만 같다.
대가야 지역이었던 경북 고령에 가면 일본 천황의 고향이라며 매년 한일 양 국민이 모여 제사를 지내는데, 이들은 일본 고대 큐슈지역 통일 정권이었던 야마 대국의 여왕 히미꼬가 3살 때 아버지와 일족을 따라 이곳에서 큐슈지역으로 이주하여 여왕이 되고, 그 남동생이 천황이 되었다고 믿는다.
더 나아가, 세종이 이종무로 하여금 대마도의 왜구를 토벌하고 확실하게 한국령(경상도)에 예속시켰다는 주장도 하는데,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이종무의 정벌 후, 대마도주가 식량부족으로 인해 조선에 복속을 요청하여 형식상 대마도를 조선의 땅으로 복속하였으나, 이것은 명이 조선을 형식적으로 봉했듯이 그야말로 ‘형식적’인 것으로 중앙에서 우리 관료가 파견되어 행정권, 사법권을 행사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으며, 그마저도 얼마 되지 않아 원상복구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이종무의 대마도 침공에 대해 토벌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정벌이란 표현을 썼는데, 이것도 대마도를 외국으로 인식한 표현이다. 우리 땅이라면 정벌이 아니라 토벌이라고 써야 맞다. 세종이 대마도를 한국령에 예속시켰다면, 조선왕조실록 세종조 기록에 ‘일본국 대마도’란 표현이 어떻게 4번이나 나올 수 있는가.
또한, 대마도는 명백한 조선 영토로 인식되다가 일본이 근대국가 재편과정에서 일본 영토로 편입했고, 조선팔도총도와 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에 우리 땅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며, 18세기 일본 민간 지리학자가 대마도를 한국 땅이라고 표시한 지도를 가지고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오가사와라 제도를 넘겨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아쉽게도 반대되는 증거들이 넘친다.
5세기 삼국사기 신라 실성이사금 조에 왜인이 대마도에 병영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나오고, 11세기 고려사 문종/선종 조에 이미 ‘일본국 대마도’로 표시된 기록이 나오며, 15세기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에 그려진 대마도 지도에는 일본국 소속임이 명시되어 있고, 결정적으로 조선왕조실록에 태조부터 고종까지 무려 80여 회에 걸쳐 ‘일본국 대마도’로 표시된 기록이 존재한다.
7세기 백제 멸망 시 대마도의 일본 파병군 지원부터 13세기 여몽 연합군의 대마도 침공 및 살육, 16세기 임란 시 소서행장의 사위였던 대마도주의 선봉 부대 합류 사실만 봐도 대마도가 일본과 훨씬 친근한 관계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일본어가 계속 사용되었던 점도 그렇고, 19세기 메이지 정부가 들어서고 폐번치현(廃藩置県)이 단행되면서 순순히 일본의 행정구역에 포함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대마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이 더 이상하다. 어설프게 사료를 제시하면서 ‘대마도는 우리 땅이다.’라고 하는 것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
환단고기 고구려 본기에 규슈와 대마도는 삼한이 나누어 다스리던 곳으로 본래 왜인들이 세거한 곳이 아니라 하고, 대마도는 신라에 속한 좌호가라와 고구려에 속한 인위가라와 백제에 속한 계지가라 등 삼가라로 나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 책은 남북한과 일본 사학계에서 20세기 이후 조작된 위서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우선, 환국의 영역이 남북 5만 리라는데, 고대에 이렇게 광범위한 통일국가가 존재하였다고 믿기 어렵고, 그것을 입증할 만한 사료가 발견된 적이 없다. 현재 우리 민족을 다 합쳐도 1억이 안 되는데 당시에 벌써 1억8천만 명이나 되었다는 것도 그렇고, 역대 단군의 평균 재위 연수가 44년 6개월이나 되는 것도 이상하다.
단군조선이 하나라, 은나라를 정벌했다는 기사는 중국 문헌과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세계가 겨우 청동기시대로 접어들 무렵에 정교한 조세제도 및 구휼제도, 지방 감찰제와 천거제, 조선소와 신문고, 일종의 세계 박람회가 있었다는 것도 이상하다. 단군 시대에 이미 한글과 유사한 가림토 38자를 만들었다는데, 이런 사실을 전하는 다른 기록이 없음은 물론이고 만주나 한반도의 어떤 유적, 유물에서도 비슷한 문자가 발견된 적이 없다.
광개토왕의 대마도 및 일본열도 정복, 임나연정 설치 등 삼국사기에 나오지 않는 사실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하지 못하였을 이유가 없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기존의 모든 역사서는 틀린 것이 된다.
이와 같이, 환단고기는 사회발전 단계나 다른 역사기록과도 맞지 않고 객관적 타당성을 결여할 뿐 아니라 참고했다는 저본사료도 어느 것 하나 발견된 바가 없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전무하다. 오히려, 근거도 없이 역사를 과대 포장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혼동시키고 역사의 보편타당한 이해를 저해하는 부작용마저 우려되고 있는데, 이런 위서를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로 삼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편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에다가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는데 대통령이 그런 요구를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겠냐는 주장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국제법에 능통한 이 대통령이 독도를 되찾으려 시도하는 일본으로부터 독도를 지켜내기 위해 전략상 그랬다는 설이 있다.
이명박 정부 때 김황식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대마도가 누구 땅이냐는 질문을 받고서 우리 땅이 아니라고 답변한 바 있다. 이분은 판사 출신으로 대법관과 감사원장을 지내기도 한 분인데, 애국심이 부족하거나 친일파라서 그런 답변을 했겠는가.
끝으로, 대마도와의 거리가 우리 쪽이 훨씬 가깝다는 주장도 하는데, 국제사법재판소 판례를 보면 거리는 별로 상관이 없다. 프랑스 쪽에 바싹 붙은 섬 하나를 두고 영국과 프랑스 간에 분쟁이 붙었는데, 국제사법재판소는 영국의 손을 들어준 적이 있다. 거리보다는 세금 납부를 어느 쪽에다 했는지, 사법 관할권을 어느 쪽에서 행사했는지, 어느 쪽 주민이 들어가 살면서 땅을 점거, 지배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여러 증거 자료를 종합해보면, 대마도는 고려 말 이후 최소 600년 이상 일본의 땅이 되어버렸고, 지금 와서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만주가 옛날에 고구려 땅이었으니 중국더러 내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오래 외교관 생활을 하고 일본 문화에 대한 저서를 낸 친구도 같은 의견이었다.
대마도 영토 회복 운동을 벌이는 분들은 나름대로 애국심을 가지고 귀중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더욱 곤혹스럽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목소리를 높여가는 상황에서 민간 차원에서 대마도를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자는 전략 차원이라면 독도를 굳히는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독도보다 훨씬 역사적 근거가 빈약한 대마도 영유권 주장이 성공할 가능성도 없고, 오히려 일본 측에 의해 한국은 일본의 영토인 것이 분명한 대마도를 차지하려는 야욕을 부린다며 독도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냐는 역공격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국가 역량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여론도 불리해지면서 자칫하다가는 일본의 전략에 말려 독도마저 위태해질 수가 있다. 더욱이, 일본은 한미일 군사동맹의 한 축으로서 남북한 간에 전쟁이 터지면 우리를 도울 중요한 우방인데, 영토 문제로 극한상황까지 치달아서야 하겠는가.
향후 5년 내 한반도에 급변사태가 벌어져 통일된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데, 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데도 이웃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행동이 행여 소탐대실은 아닌지, 진정한 애국의 길이 맞는지, 국가의 장래와 발전에 어떤 보탬이 될는지 진지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첫 수필집 『앎이란 무엇인가』(2015년)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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