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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열
독도사랑 모임 지회장인 친구를 따라 1박 2일 일정으로 대마도를 여행했다.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다시 대마도로 가는 정기 연락선을 탔는데, 1시간 10분 만에 대마도 최북단 히타카쓰항에 닿았다. 백여 리(49km)에 불과한 거리니, 참으로 가깝다. 울릉도와 제주도가 300여 리씩 떨어져 있는 데 비하면 이렇게 가까운 섬이 어떻게 일본 땅이 되었나 의아하기도 하다.
가깝긴 해도 외국이라고 입국 심사하는데 1시간이나 걸렸다. 무슨 심사를 그리 오래 하나 했더니, 지문 찍고 얼굴 사진 찍는 카메라 한 대가 고장 나서 그랬다나 뭐라나….
점심 식사 후 버스를 타고 바로 관광에 나섰다. 맨 처음 가본 곳이 한국전망대라는 언덕이었는데, 화창한 날씨라 저 멀리 부산이 아스라이 보였다. 전망대 앞바다에서 조선 시대 외교사절이 탄 배가 풍랑으로 침몰해 100여 명이 수장되었다며 추모비가 서 있었다. 우리도 올 때 바람이 거세 상당수가 멀미로 고생했는데, 항해술이 미비했을 그 옛날 바다로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을지 짐작이 되었다.
더 높은 구릉 지대를 돌아서 대마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에보시타케 전망대에 도착했는데, 굴곡진 아소 만과 점점이 흩뿌려진 섬들이 절경이었다. 대마도는 섬 전체가 해발 400m 내외의 산지로 계곡의 비탈이 가파르고 험준했다. 청정해역과 풍광이 빼어나고 웅대한 자연의 신비로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자연휴양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남쪽으로 내려오다 일본 건국 신화가 숨어있는 와타즈미 신사에 도착했다. 천신의 아들과 용왕의 딸이 만나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길러준 이모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초대천황 진무(神武)라 한다. 일설에는 천신의 아들이라는 히코호호가 금관가야 시조 김수로왕의 후손이며, 신사로 향하는 다섯 개의 문이 김해를 향하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몰락한 가야계 왕족이 도래하여 세력을 키워 천황이 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부근에, 백제계와 신라계 주민이 대마도주 자리를 놓고 쟁탈전을 벌인 가미자카와 전쟁터가 있다는데, 입국 심사하는데 시간을 뺏겨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삼국시대부터 가야, 백제, 신라 등지에서 한반도인들이 건너와 대마도의 원주민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마도는 당시 일본 열도로 도해하는 한반도인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면서 양쪽에 모두 다리를 걸치고 있었는데, 7세기 백제 멸망기에 일본 원정파병군을 대마도가 도왔던 정황을 고려하면, 당시에 이미 일본 측과 밀착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고려 중기 이후 왜구의 침탈이 극심해지자 조정에서 섬 주민들을 본토로 소개하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사이에 완전히 일본 땅으로 굳어진 듯하다.
남으로 더 내려와 북섬과 남섬을 하나로 이어주는 빨간 만관교를 건넜다. 원래는 두 섬이 하나였는데, 러·일 전쟁 전에 운하를 파서 분리되었고, 이 운하가 러시아 함대를 격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드디어 이즈하라에 도착하여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이즈하라 시내 도보 관광에 나섰다. 남섬에 위치한 이즈하라는 대마도의 중심지로, 나가사키현 소속 대마 시청이 있는 곳이다. 이즈하라는 13세기 중엽이래 메이지 유신에 이르기까지 대마도를 지배해온 소오(宗) 씨 일족의 거성이 있던 곳이고,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갈 때 반드시 들르던 곳이라 조선통신사 비를 비롯하여 고려문 등 많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성터 안에는 조선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 결혼 기념비도 있었는데, 정략결혼에 희생되어 이곳에 와서 정신병까지 얻었다는, 한 조선 여인의 이야기가 애잔하다.
조선통신사 영빈관 터 옆에는 대마도 민속박물관이 있었는데, 8천 년 전 원주민이 쓰던 토기 등 출토유물과 해녀와 어부들이 쓰던 생활 도구 등 민속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 이즈하라에는 최익현 선생 순국비가 백제계 비구니 스님이 지었다는 수선사 사찰 내에 서 있었다. 최익현 선생은 의병 활동을 하다가 잡혀 와 일본인이 주는 식사를 거부하고 아사하셨다 한다. 조선 선비의 대쪽같은 기상을 이곳에서도 만난다.
이처럼 대마도에는 우리와 관련된 역사유적이 많아 역사 탐방차 오는 한국인들도 많다. 관광지에는 거의 한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마지막 점심 식사를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정기 연락선을 다시 탔는데, 이번에는 바람이 잔잔하여 한결 편하게 왔다.
부산에서 훤히 보이는 가깝고도 먼 땅 대마도! 예로부터 한국과 일본 사이의 중계지로서의 위치를 차지하여 대외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섬…. 일부 우리에게 유리한 기록을 근거로 대마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학자가 있으나 우리 조정의 관리가 파견되어 다스린 적이 한 번도 없고, 우리 말이 사용되지도 않는 일본의 섬이 되었다.
안타깝지만, 지금 와서 대마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만주가 옛 고구려 영토였으니 중국더러 내어놓으라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독도마저 자기네 땅이라는 일본 우익들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는 도움이 될 듯하다.
* 첫 수필집 『앎이란 무엇인가』(2015년)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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