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102 회
살들레
수필 밝덩굴 / 낭송 옥창열
터진 담 틈으로 보이는 것은 현관으로 오르는 계단 우측에 청자분(靑瓷盆)이 여럿이 덩그렇게 놓여 있는데, 한 화분이 비어 있었다. 들레는 항상 소원하기를 내가 저기서 살면 살들레가 되어 배부르고 등 따습고, 좋은 옷 입으며, 호화스럽게 살 수 있을 텐데.... 그리고 끝에 가서는 내 마지막 휘날레로 은관(銀冠)을 쓰고 뽐내다가 내 신분을 낭만의 풍랑에 보낼 수 있을 텐데 하는 것이었다.
돌자갈 틈새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며 밑으로 밑으로만 기면서도 한두 송이 노오란 꽃만은 실히 피우다가 종자 손 뻗으면서 가난한 삶을 살았는데, 운 좋게도 박 생에게 간택되어 그 빈 자리에 등국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박 생은 용이 새겨진 금분(金盆)에 옥토를 깔고 정성을 다하여 모셨다. 하루가 싱싱하고, 일주일이 성성하고 열흘이 통통 큼큼터니, 이십 일이 되니 이건 대공이 삽십 배가 좋고 키가 하늘을 찌르는데, 잎은 부드러운 쑥잎이고 대공은 열 개 이십 개로 번식하고 있었다. 문제는 꽃이고 씨관이었다. 그런데 이게 정상이 아니다. 크기가 녹두알만한 게 피는가 마는가 하고, 관도 흉내는 내는데, 매달리는가 떨어지는가 한다. 걱정이 태산 같아 원예사 친구를 부르는데, 이 친구 말본새 한번 냉차다.- 여보게 박 생! 목숨 있는 것은 각기 잘 사는 환경이라는 게 있는 법일세. 설령 땅이 기름지고 그릇이 좋다고 하더라도, 무엇이든 잘 될 것이라는 통념은 우생지단(優生之斷)일세.- 들레가 저리 된 것은 근심걱정이 없어서일세. 너무 살기 좋으니 무엇을 걱정하겠나. 나중에 혹 박토가 되면 그때 그들의 속성을 내도 늦지 않을 텐데 말일세. 내가 여기에 써 놓은 것은 처방전일세. 읽어보게나.
“저 것을 옥토에 심는다고 국화가 될 줄 알았나? 저 살들레를 돌밭 틈세에 다시 옮겨 심게나. 그곳이 민들레의 고향일세.”
밝덩굴 약력
경기중등 교장/법무연수원, 대학 강사 역임
한글이름펴기 으뜸빛 회장 역임/한글학회 회원
한국문협 경기지부장/경기수필 회장 등 역임
수필집 5/시조집 1/희곡집 2/학술서 3권 저술
녹조근정 훈장/경기도예술대상/한국문인상 수상
#이창식문학상 #밝덩굴 #옥창열 #살들레
다음 동영상
총의견 수 0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 후 이용가능합니다.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