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창열
가세가 기울면서 생각시 된 덕임이
일찍이 아비 잃고 살얼음판을 걷던
범생이 세손 가슴에 불을 지폈구나
사춘기 소꼽친구 낯 붉히며 키운 연정
아이 못 밴 세손빈에 예의가 아니라며
마음씨 고운 소녀가 손사래를 쳤다네
권력의 피바람 몰아치는 궁중에서
세도가 친정이나 의지처 하나 없는
외롭고 참한 궁녀에 안식을 찾은 걸까
15년이 지난 뒤에 또다시 대시하며
공연히 주변 동무 벌주면서 소란 떠니
덕임이 어쩌지 못해 마음을 열었다네
간난신고 넘어서서 임금의 여인 되고
아들 낳고 딸 낳고 꽃길만 남았는데
호사엔 마가 끼는 게 세상의 이치인가
정조가 손수 지은 탕약도 보람 없이
만삭 임부 몸으로 깊은 잠에 들었네
애닯다! 시샘이 동한 귀신의 해코진가
너랑 대화하면 뜻이 맞고 정다웠는데
마음 가운데가 칼로 벤 듯 아파온다
애절한 어제御製 비문에 눈시울 붉어지네
* 의빈 성 씨는 정조가 자주 찾아볼 수 있도록
대궐 발치인 용산 청파 언덕에 묻었다가
일제가 고양 서삼릉 후궁 공동묘역으로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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