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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열
시립도서관을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하면서 독서욕에 불타던 시절. 유토피아 군주론 같은 무거운 책을 보다가 머리가 아프면, 데카메론 고금소총 같은 가벼운 책을 빌려보았다. 그중에 애니멀 섹스라는 책이 있었는데, 이런 종류의 책은 쉽고 재미가 있어서 독서 속도가 확연히 빠르고, 기억도 오래간다.
상전벽해 할 세월이 흐른 지금,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가 썼다는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는데, 애니멀 섹스는 내용이 또렷이 기억나니 말이다.
동물 중에는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경우가 있는데, 새끼를 낳기 위해 단백질을 보충하려는 본능 때문인 것 같단다. 하룻밤을 보낸 전갈의 신혼 방을 들여다보면, 으스스하게도 암컷은 있는데 수컷이 온데간데없다. 거미는 수컷보다 암컷이 훨씬 큰데, 교미가 끝나자마자 수컷이 줄행랑치지 않으면 암컷에게 잡아먹힌다. 사마귀는 교미 후에 암놈이 수놈의 목을 사정없이 물어뜯는데, 수놈은 머리가 잘린 줄도 모르고 환희에 몸을 부르르 떤다고 한다.
동물을 통틀어 수컷의 생식기가 가장 큰놈은 바다의 고래로, 보통 큰 야구선수만 하고, 최대 3m에 달한다. 뭍에 사는 동물 중에서는 몸집이 가장 큰 코끼리가 그것도 단연 제일 커서 1.5~2m. 고릴라는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3cm에 불과해 덩칫값을 못 한다고 한다.
하이에나는 몸집이 수컷보다 암컷이 크며, 무리의 우두머리도 암컷이 맡는다. 이런 예외적인 사례를 빼면, 포유류 대부분은 수컷이 암컷보다 더 크다. 어류는 암컷이 수컷보다 압도적으로 큰 사례가 꽤 있고, 파충류인 아나콘다도 암컷이 훨씬 크며, 사마귀 등 곤충류도 대부분 암컷이 수컷보다 크단다.
그럼, 왜 어떤 종에서는 수컷이 크고 다른 종에서는 암컷이 큰가? 암컷이 크면 더 많은 알이나 새끼를 낳을 수 있으니, 자손 번식에 대한 욕심이 넘치는 종일수록 암컷이 더 크게 진화한 걸까? 책에서는 짝짓기 경쟁의 결과로 설명한다.
암컷을 두고 수컷끼리 힘겨루기 경쟁을 벌이는 종에서는 수컷이 암컷보다 큰 경우가 많고, 반면에 그런 경쟁을 벌일 일이 없는 종에서는 암컷이 수컷보다 큰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시 말해, 수컷끼리 벌이는 경쟁이 치열할수록 암수몸집 차이가 크다. 수컷 한 마리가 무리의 모든 암컷을 차지하는 하렘 체제의 경우 수컷끼리의 경쟁이 매우 치열한데, 실제로 그런 짝짓기 행태를 보이는 물개의 경우 암수의 크기 차이가 5배에 달한다.
일부일처제에 가까운 인간의 경우, 암수 차이가 크지 않은데, 하렘 체제 고릴라는 차이가 크다. 수컷 우두머리가 있어도 암컷이 바람을 잘 피우는 침팬지는 독점체제가 아니라서 그런지, 암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이론이다. 듣고 보니, 신기하게도 딱딱 들어맞는다.
지적 능력의 차이를 빼면, 인간도 기본적으로 동물일 수밖에 없다. 고릴라나 물개처럼 암수의 체격 차이가 클수록 독점체제라고 하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인간 사회는 다수가 고루 만족할 수 있는 체제로 진화 발전해 온 것 같다. 다행이다! 모든 구성원이 공존공영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일구어낸 인류가 자랑스럽다!
* 제3 수필집 『워낭소리의 추억』(2021년)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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