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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열
나는 내가 보고 듣고 배운 것을 기초로 이 글을 쓴다. 공직을 거쳐 순수문학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역사 쪽에 관심이 더 많아서 이런 주제를 다루게 되었다. 나는 왜곡할 이유도 과장할 이유도 없다. 역사를 정확히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국익과 실리를 추구하며 세계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것임을 알아주기 바란다.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배를 당한 역사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로 인한 피해와 아픈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두고두고 곱씹으며 반일 감정을 선동질하는 것도 국익을 위해 옳지 못한 일이다. 해방되고 한 세기가 다 되어 가는데, 이제는 피해 의식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볼 때도 되지 않았나.
한민족이 외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것은 한사군 설치 후 420년과 한일 합방 후 35년, 도합 450년 정도다. 거기에 비해 중국은 역사시대의 절반, 기원후만 따져 1천 년 정도를 한족이 아닌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다. 이만하면, 우리의 역사는 준수한 편이다. 뭐가 그리도 부끄러운가?
조선 시대는 양반 신분제 사회로 고유한 전통문화를 발전시켜왔으나, 말기에 이르러 세도정치로 인한 삼정의 문란과 부패, 대원군의 쇄국 정치로 인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신세였다. 외세의 간섭이나 지배 없이 자력으로 근대화를 도모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김옥균과 같은 선각자가 있었지만, 그마저 수구파에게 살해되고 목이 효수되어 조리돌림을 당했다.
더욱이 조선은 자국민을 노예로 부리던 쓰레기 같은 나라였다. 미국보다 더 오래 노예를 사고팔며 당당하게 부렸다. 물론 역사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있고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인권을 중시하는 근대적 시각에서 볼 때 결코 자랑스러워할 만한 나라는 아니다. 나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서 빈자와 약자의 편에서 역사를 보려 한다.
고려 시대에 노비는 전체 인구의 10% 미만이었으나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40~50%로 높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비제도를 확고히 한 왕은 세종이었으며, 세수 확대를 위해 노비제를 후퇴시킨 왕은 영조였다. 노비제도가 약화한 18세기 후반에도 30%를 넘었는데, 이것은 세계 역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은 비율이라고 한다.
노비는 인간이 아닌 소유물이고 짐승이었으며, 주인이 마음대로 사고팔았다. 노비는 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었고, 증인의 효력도 없었으며, 주인이 자신의 노비를 죽여도 흐지부지되어 처벌을 받지 않았다. 노비는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종종 그 아비를 알 수 없어 종모법을 썼고, 양인녀와 노가 결혼해도 그의 자식은 천인이었다. 노예시장은 없었으나 노비는 말 한 필 정도의 가격으로 거래가 되었다.
무관 박계숙 박취문 부자가 남긴 부북일기赴北日記에는, 임지인 함북 회령까지 가는 길에 2~3일마다 관기 아니면 민가 계집종의 잠자리 시중을 받은 기록이 나온다. 주인이 손님의 잠자리 시중을 들라고 시키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존재가 노비였다. 앞서가던 실학자 정약용조차도 종모법을 확실히 해서 노비를 줄이자고 했지, 노비제를 없애라고 하지는 않았다.
이 노비들을 해방해준 나라가 일본이다. 봉건왕조를 쓰러뜨리고 오늘날의 민주주의 근대국가의 토대가 아이러니하게도 일제의 침략과 지배를 통해 이루어졌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니 뭐니, 비난들 하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떡하나.
양반 지주와 지배계급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제로부터의 독립이 절실한 과제였겠지만, 내 아버지 할아버지 같은 하층민에게는 지배자가 조선의 이왕가李王家이든 일제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뒤집어져야 할 세상이었다. 내가 친일에 가까운 발언을 하는 건 이런 역사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다.
위안부, 징용자 문제 등에 대해서 현재 좌파들이 정치적 필요에 의해 역사적 사실을 과장 왜곡하고 무조건적인 반일을 선동하는 것에 반발하는 글을 써온 것도 그런 연유다.
조선 말기, 프랑스 외교관이 본국에 보고한 문서에도, 조선은 사람을 사고팔고 너무나 미개하여 스스로 개혁될 것 같지 않다는 말이 등장한다. 오죽하면 구한말 동학 농민군의 요구안에 노비제 폐지가 있었겠는가. 스스로 개혁하면 좋았겠으나 그럴만한 여건과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가 스스로 못하니 외세가 개입하여 강제로 해준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받은 모멸과 수치, 반감은 엄청났지만, 철도 도로 항만 교육 의료 공직 체계 등 거의 모든 근대국가 시스템이 이 시기에 구축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제에 수탈을 당해 헐벗고 굶주렸다고들 하지만, 국민의 신장과 영양상태가 개선되었다는 통계수치도 있다. 조선 왕조 체제를 그대로 두었을 때보다는 차라리 일제의 지배를 받은 편이 우리에게 축복이었을 수가 있다는 뜻이다.
사실이 이러한데, 오늘날 서민과 약자 편이라는 좌파들은 조선 시대만큼은 왕의 입장에서 본다. 모순덩어리다. 서민 약자 편이라면 이 씨 왕가의 몰락은 축복이자 행운이라 해야 맞지 않나.
일본은 한미일 삼각동맹의 한 축이며, 남북한 간에 전쟁이 터지면 우리를 도울 중요한 우방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도 없어서는 안 될 이웃 나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 우리 국민이 무분별한 반일 선동에 부화뇌동하여 국익을 훼손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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