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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창 열
옛 직장 입사 동기들이 오랜만에 모여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최근 40대 남성이 아내의 전남편과 의붓딸을 살해한 사건이 화제에 올랐다. 특히, 의붓딸을 성폭행까지 했다는 대목에서, 이야기를 꺼낸 친구가 “윤리적으로 그럴 수가 있느냐.”며 거품을 물었다. 성폭행이 나쁘다는 점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었지만, 이야기 방향이 이상하게 근친혼 쪽으로 흘러가서 논란이 일었다. 민감한 문제라 오해를 살까 봐 전달하기도 조심스럽다.
일본에서 오래 근무하고 일본문화에 대한 저서를 낸 친구는, 일본의 전통가옥이 거실 탁자에 보온용 천을 두르고 그 아래 손과 발이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은밀한 접촉이 이루어져 근친상간이 많다고 했다. 일본 야동에도 의붓자식 의붓남매 삼촌 고모 등 친척 간의 간음이 자극적인 소재로 흔히 묘사되고 있는데, 성기 부분만 모자이크 처리하면 당연히 합법이란 것이다.
내 부모님도 해방 전 일본에 13년간 사셨는데, 일본인은 며느리가 목욕탕에서 나와 벌거벗고 시아버지 앞을 예사로 지나간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를 미국 연수 시절에 동급생인 일본 여학생에게 했더니, 지금은 안 그렇다며 펄쩍 뛰었다. 결혼은 원래 3촌 이상이면 가능했는데, 전후(戰後)에 4촌 이상만 가능하도록 민법을 개정했다고 한다.
하긴, 우리도 예전에는 근친혼이 자유로운 시절이 있었다. 신라 진흥왕은 법흥왕의 아우와 딸이 결혼하여 낳은 자식이고, 진흥왕의 장남인 동륜태자는 고모인 만호부인과 결혼했다. 김유신은 누이동생(문희)의 딸을 후처로 맞아 김춘추의 처남이자 사위가 되었다. 지금으로서는 황당한 일이지만, 신라 시대에는 당연한 일상으로 친남매 간만 아니면 모두가 결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결혼풍습은 고스란히 고려 시대로 이어져, 태조 왕건의 넷째아들인 광종은 이복누이와 결혼했고, 왕건 손자인 경종은 왕건의 손녀인 천추태후 자매 둘을 동시에 비로 맞았다. 천추태후 동생인 헌정왕후는 경종 사후, 부친의 동생인 왕욱과 정을 통하여 현종을 낳았다. 고려왕 34명 중 19명이 왕족 출신, 즉 왕 씨(王氏)들끼리 근친혼을 했다고 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 이웃 나라 일본이 미개하다고 비웃을 처지인가 싶다. 일본은 독특한 신사 출입문과 아치형 사찰 지붕 장식 등 우리와는 구별되는 문화가 있지만, 고대에 대륙 부여계를 비롯한 한반도인이 대거 일본열도로 이주하면서 북방 민족의 자유스러운 성 풍속도 함께 건너갔을 공산이 높아 보인다.
이러한 근친혼 풍속은 우리와 일본뿐만 아니고, 세계 곳곳에서 나타난다. 고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남동생과 결혼했고, 클레오파트라의 조부모와 외조부모는 모두 한 부모의 자녀였다. 불교 개조 석가모니의 부친 정반왕은 삼촌의 딸 마야 부인과 결혼하여 석가모니를 낳았고, 마야 부인이 석가모니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뜨자 처제와 결혼하여 석가모니를 양육하게 했으며, 석가모니는 외삼촌의 딸인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았다. 인도 성웅 마하트마 간디와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 증기기관 발명자 제임스 와트는 모두 사촌과 결혼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근친혼을 한 이유는 가문의 권력과 재산을 지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흉노와 부여, 고구려 등 유목민족 사이에 성행한 형사취수제도 형이 죽은 후 형수가 재가했을 때 가문의 재산이 유출될 것을 우려해서였다는 설이 있다. 물론 혼자 된 형수를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예로부터 전쟁이 잦아 과부가 많았던 중동에서 아내를 네 명까지 둘 수 있게 한 것도 일종의 복지정책이었다는 말이 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시골 동네에도 형이 죽은 후 형수를 취하여 아이를 낳고 사는 영감이 있었다. 그 아이가 내 친구였는데, 본가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집을 마련하여 살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구려 고국천왕의 왕비 우씨왕후는 남편 사후 시동생을 찾아가 산상왕으로 추대하고 2대에 걸쳐 왕비가 되었는데,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유교를 배운 사람들은 그녀에게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다. 유교의 윤리관에서는 친족 관계에서 시동생과 형수는 가장 엄격하고 조심스러운 사이여야 하므로, 그녀의 재혼은 짐승이나 할 수 있는 음란하고 사악한 짓이며, 인륜을 무시한 패륜을 저질렀으므로 극형에 처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우씨왕후가 이런 이유로 비난받아 마땅할까? 우씨왕후의 혼인 형태인 형사취수제는 고구려 문화의 특성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인류 혼인사에서 넓게 보이는 한 형태일 뿐 후세의 기준으로 함부로 비판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티베트에서는 한술 더 떠서, 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살아있는 형제 여러 명이 한 여자에게 장가든다.
형사취수제는 고구려 중기 이후 왕권이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제로 바뀌고, 중국 등 농경사회 영향을 받으면서 급속히 쇠퇴했다. 근친혼이 불임과 기형아 출산 등 유전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고려 문종은 사촌 간 혼인에서 출생한 자는 관리 등용을 금지했고, 선종은 이모와 조카 간 결혼은 허용하나 동부이모(同父異母)의 자녀 간 혼인을 금지했다. 충선왕은 동성 금혼령을 내려 어길 경우 관리 등용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려 왕실의 근친혼은 몽골 지배 이후 점차 소멸하였는데, 평민의 경우는 고려 말까지 여전히 근친혼이 자유로웠다는 말이 있다.
특히,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유교 이념에 따라 근친혼을 패륜이자 금수만도 못한 행동으로 간주하고 법적, 관습적으로 금지했다. 정도가 지나쳐서 동성동본은 물론, 같은 수로왕의 후손이라며 김해김씨와 김해허씨, 양천허씨 등 이성동본과 이성이본 간 혼인까지 금지했다. 다만, 외가 쪽은 성(姓)과 본(本)이 다르지만, 유전학적으로는 똑같은데도 근친혼을 허용하는 모순을 보였다.
근친혼을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우생학적으로 열성인자가 계속 유전되어 유전병의 위험을 높인다는 것인데, 맞는 말이긴 하나 현재 생존에 직결될 정도의 치명적인 유전병은 이미 거의 소멸했고, 근친혼에서 일어나는 유전병 발생확률은 유전병 인자를 가진 보통 사람과의 결혼에서 일어날 확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이것 때문에 근친혼을 금지시킨다면 유전병 인자를 가진 보통 사람이나 선천성 장애인 역시도 결혼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뜻이 된다. 찰스 다윈의 가계처럼, 근친혼에서 천재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과학향상협회와 매사추세츠 대학교 연구팀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근친혼이 유전적으로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아 주목을 끌었다. “특히, 4촌 간의 혼인을 통해 낳은 2세들의 유전적 결함 위험성은 지금까지의 주장과는 달리 치명적이지 않으므로, 많은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근친혼 금지법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럽에선 동성혼이 인정되었고, 미국도 점점 인정해주는 추세에 있다고 한다. 가톨릭 국가는 6촌까지, 일본과 거의 모든 이슬람국가는 4촌까지, 독일은 3촌까지, 스웨덴과 미국 뉴저지주는 유전질환 검사를 해서 유전질환 인자가 발견되지 않으면 1촌까지도 근친혼을 허용한다. 통계가 나와 있는 세계 대부분 나라는 4촌 이상 결혼을 허용한다고 보면 맞다.
우리나라 민법은 오랫동안 동성동본인 혈족 간 결혼을 일절 금지해 오다가 8촌 이내의 혈족에 대해 금지하는 것으로 범위를 축소 개정했다. 대신, 형부와 처제 사이 같은 4촌 이내의 인척, 6촌 이내 혈족의 배우자였던 사람 등과는 결혼하지 못하도록 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세계에서 결혼 금지촌수가 가장 높은 쪽에 속한다. 그런데도, 사촌 간 결혼을 허용하는 유대인 노벨상 수상자는 180명인데, 머리가 더 좋아야 할 우리는 1명밖에 없다.
근친혼을 비난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근거는 근친혼이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로서 윤리적,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치관과 규범의 문제로, 마치 “신이 있느냐 없느냐, 어느 종교가 좋으냐?”는 물음만큼이나 주관적이다. 사형제도가 폐지된 나라에서는 아직도 사형제도를 존치하고 있는 우리에 대해 시비를 걸 수도 있다. 모든 정치 쟁점에 대한 의견의 진폭은 참으로 넓다. 다만, 유전질환의 위험이 크지 않고 의외로 근친혼을 허용하는 국가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4촌 밖의 근친혼에 대해서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설령 우생학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근친 간 결합은 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상책일 것 같다.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동물은 물론 식물도 사랑하면 흥분하는데, 암술머리에 수술 꽃가루가 묻으면 순식간에 반응이 일어나 끈끈한 점액을 분비하면서도 자가수정(自家受精)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식물은 자웅동주(雌雄同株)가 많은데, 자신의 수술 꽃가루가 암술에 붙으면 바로 인식해서 암술대를 막아 꽃가루가 씨방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말 없는 식물마저 본능적으로 근친을 피하는 걸 보면, 사람도 신선한 피를 수혈하고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일 때 더욱 우수하고 진화된 종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첫 수필집 『앎이란 무엇인가』(2015년)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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