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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열
햇살이 굼뜬 겨울의 등짝을 떠밀고 검은 대지가 기지개를 켤 때쯤 수줍게 고운 얼굴을 내미는 꽃이 있다. 설렘과 그리움을 한가득 그러안고 노랑 분홍 물결을 일렁이는 개나리와 진달래다.
남녘에서는 이미 꽃소식이 들려온다. 봄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길가에서 산에서 해맑게 미소짓는 그 꽃들을 보노라면, 시름은 바람 따라 저 멀리 사라지고, 벅찬 환희가 가슴에 가득하다.
봄이면 우리 산야 어디에서나 지천으로 피어나 겨레와 함께 살아왔다. 노란 저고리와 분홍 치마를 즐겨 입던 우리 누이들을 닮은 꽃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때, 개나리나 진달래를 국화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내 고향에서는 진달래를 참꽃이라 불렀다. 어린 시절, 야산에 올라 많이도 따먹었다. 별맛이 있는 건 아니지만, 먹을거리가 귀하던 시절의 좋은 간식이었다. 화전을 부치기도 하고 두견주를 담기도 한다 들었다.
같은 진달랫과지만 철쭉꽃은 독성이 있어서 먹으면 안 된다. 꽃이 먼저 피는 진달래와 달리, 철쭉은 잎이 먼저 나와서 구별이 된다. 또 철쭉은 진달래가 진 다음에 연달아서 피기 때문에 아랫지방에서는 산철쭉을 연달래라고도 한다.
강화 고려산과 여수 영취산은 진달래 군락지로, 영주 소백산과 합천 황매산은 철쭉 군락지로 봄이면 천상의 화원을 방불한다. 눈부신 꽃과 파란 하늘, 회갈색 암석과 연록의 싱그러움을 즐기려는 인파가 부딪힐 정도로 북적인다.
지리산 바래봉은 1970년대 초에 면양을 방목하면서 초지를 조성하였는데, 양이 먹지 않는 산철쭉이 자연 군락을 이루어 봄이면 진홍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천혜의 비경을 자랑한다.
그런데 개나리와 진달래, 철쭉은 강추위를 거쳐야 개화하는 춘화현상春化現狀을 보인다. 호주처럼 겨울에도 따스한 곳에 갖다 심으면 아예 꽃이 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땅의 기후에 적응하여 우리 마음속 고향이 된 꽃들이다.
제3 수필집 『워낭소리의 추억』(2021년)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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