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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열
뉴욕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이야기다. 어느 날, 점심 한 끼를 해결해줄 식당을 찾아 맨해튼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들 몇이 보도 옆에 책상을 갖다 놓고 무슨 서명을 받고 있었다.
남자들은 무관심하게 지나치는데 여자들이 주로 서명을 하는 듯했다. 무언가 싶어서 기웃거렸더니, 나는 서명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건지, 어서 갈 길 가라는 투로 손짓을 하는 게 아닌가. 벗어나면서 붙여놓은 선전 구호를 보니, 포르노pornography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고 있었다.
그다음 날 수업 시간에 수염이 허연 노교수에게, 미국은 포르노를 왜 금지하지 않는지 물어보았다. 교수 이야기로는, 포르노에 대해 가끔 금지해 달라는 소송이 제기되지만, 여론조사를 해보면 미국인 중 1/4이 반대하고 3/4이 찬성하기에 합법적으로 유통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맨해튼의 가판대나 성인용품점에서는 포르노 잡지를 제한 없이 판매한다.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는 점잖은 편이고, 허슬러는 다양한 피부색의 여성들이 노골적으로 다리를 벌린 사진을 실었다. 남자 나체 사진도 있지만, 독자층이 주로 남자여서인지 대개 여자 사진을 싣는다.
비디오 가게에 가면, 안쪽 귀퉁이에 만 18세 이상 들어갈 수 있는 성인 코너Adult Corner가 있다. 커튼을 들치면 다양한 포르노 영화가 진열되어 있는데, 인종 별이나 인종 간은 물론 동성 간의 섹스를 다룬 것도 있다. 사려면 20~30불을 주어야 하는데, 1.5불을 내면 빌려주니 굳이 살 필요가 없다.
내가 빌려다 본 영화 중에 허슬러 발행인 래리 플린트의 일대기가 있었다. 시카고에서 허드렛일하던 래리가 포르노 잡지를 만들었는데, 수많은 소송에 시달리다가 끝내는 반대론자의 총에 맞아 휠체어를 타는 신세가 되었고, 이런 분들의 희생이 있어 우리가 포르노를 즐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싱가포르계 미국인 여성이 한꺼번에 250명의 남성과 섹스를 한 실화가 영화화된 적도 있다. 그것도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다 보았는데, 그 여성은 저능아나 문제아가 아니라 캘리포니아에서 법학대학원을 나온 멀쩡한 인텔리였다. 250명과 한참에 어떻게 하는가 싶었는데, 한 사람과 오래 하는 게 아니라 잠깐 하고 다음 사람에게 바통을 넘기는 식이었다.
미국을 흔히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라고 한다.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뒤섞여 사니 생각도 다르고, 가끔 다른 생각을 하는 자를 테러하기도 한다. 낙태 시술 의사가 총을 맞고 살해되었고, 안락사 시술 의사가 고발되어 징역형을 받은 적도 있다. 아직 낙태나 안락사가 완전히 허용된 것은 아니지만, 그런 희생이 있어 허용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모든 문화에는 장단점이 있어서,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거나 그르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히틀러처럼 제 생각만이 옳다고 믿는 광신자들이 문제다. 또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서나,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자유’가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제3 수필집 『워낭소리의 추억』(2021년)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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