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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열
나 어릴 때 시골에서는 자질구레한 병이 생기면 대개 민간요법으로 치료했다. 돌에 맞아 머리가 터지면 된장을 바르고, 종기가 생기면 질경이 잎을 붙여 고름을 빨아내는 식이다. 아이의 배가 아프면 바가지에 밥과 김치를 말아 객귀客鬼를 달래는 미신적인 방법도 썼다.
신경통처럼 조금 더 어려운 병이면, 인근 마을 침놓는 의원에게로 갔다. 중학교 때 20리 길을 걸어다니다 보니 무릎이 아파서, 어머니를 따라 그 의원에게 가서 침을 맞은 적이 있다. 정식 의원 자격이 있는 분은 아니고, 용한 침구사였다는 선친에게서 배워서 하는 거라 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작은 증조부님도 침을 배워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주었다고 들었다. 병원에 가려면 교통도 불편하려니와 병원비가 부담되어, 웬만한 병 가지고는 병원에 가지 않고 그런 식으로 해결했다.
우리 시골 동네에 키는 부인보다도 작지만 성실하고 당찬 아저씨가 있었는데, 가축에게 침을 놓는 재주가 있었다. 한 번은 우리 소가 병이 나서 그 아저씨를 불러 침을 맞은 적이 있다.
사실인지 모르지만, 당 태종이 안시성 전투 때 부상한 자국 병사에게 친히 침을 놓아주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도 있다. 옛 선비 중에는 본업 외에 침술을 배워 자신과 주위 사람의 건강을 돌본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나도 건강에 관심이 많아서 작은형이 중학교 졸업할 때 상으로 타온 『백만인의 의학』 같은 의서를 탐독하다가, 간편한 침으로 병을 고친다는 침술을 익혀보기로 했다. 시골에서 독학하던 열일고여덟 살 무렵이었다.
침술은 보통 침과 뜸을 포함하여 침구술鍼灸術이라고도 한다. 일단, 부산에 가서 관련 책을 사서 읽었는데, 식물을 재료로 짓는 한약이 농경민족 사이에서 발달했다면 휴대가 간편한 침구는 유목민족 사이에서 발달한 것이라고 했다.
서양의학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사람 몸에는 혈관 외에 기氣가 흐르는 경락經絡이란 게 있고, 경락의 어느 지점을 침으로 찌르거나 뜸으로 태워서 상처를 내면 백혈구와 면역력이 증가하면서 병이 치유되는 원리란다.
침에는 금침 은침 철침이 있는데, 금침은 흥분 작용이 있어 소아마비 같은 마비성 질환에 좋고, 은침은 진정 작용이 있어 두통 치통 같은 통증 질환에 좋으며, 철침은 음양이 뒤섞여 있어서 가장 못하다고 했다. 나는 비싼 금침 은침을 살 수가 없어서 싼 철침을 여러 개 사서 연습했다.
먼저, 내 허벅지에다 직접 찔러본 후에 동생의 복사뼈 아래를 찔러보기도 했다. 어떻게 하니, 동생이 찌릿찌릿하게 반응이 온다고 했다. 마른 쑥을 말아서 불을 붙이고 살을 태워보기도 했다.
그런데 공부를 할수록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걸 알았다. 침을 얕게 시늉만 하듯 찌르는 방법도 있지만, 질환에 따라 3cm 정도로 깊게 찌르라고 하는 것도 있어서 자칫 큰 사고를 일으킬 위험성이 있었다.
부모님도 “어떤 사람이 침 잘못 맞고 앉은뱅이가 되었다더라.”면서 걱정하시고, 다른 공부가 바빠서 점차 관심이 멀어졌다. 소문을 듣고 가축 침놓는 아저씨가 왔길래, 내가 샀던 침구 도구를 몽땅 드리고 손을 뗐다.
한 분야에 통달하려면 피나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의술은 말할 것도 없다. 독학으로 어려운 분야가 특히 이쪽이 아닌가 한다. 의대에 들어가서 다년간 내공을 쌓아야 가능한 것을, 나도 참 돈키호테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 제3 수필집 『워낭소리의 추억』(2021년)에 수록
(반주 : 초연-이호섭 작사 오준영 작곡 거마미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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