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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와 불경에서 지혜를 찾다-
옥창열
〔장자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꿈에 자신이 나비가 되어 기분 좋게 훨훨 날아다녔다. 깨어보니 꿈이었고, 엄연히 자신은 인간인 장자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인간인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인간인 장자가 되어 이러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이 유명한 호접몽(나비의 꿈) 이야기다. 공자와 동시대에 쓰인 책 ‘장자’는 이런 식의 간단한 우화 형식으로 쓰여 재미있고 이해하기가 쉽다.
〔진나라 지방관리의 딸이었던 이희는 미인으로 이름나 임금이 궁으로 불렀다. 처음 고향을 떠나올 때는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옷깃이 흠뻑 젖도록 울었다. 그런데 막상 임금이 사는 궁으로 들어와 화려한 침실에 온갖 진기한 음식을 먹으며 호사를 누리게 되자 처음 떠나올 때 왜 그렇게 울었던가 후회를 했다.〕
처음에 내가 참이라고 알았던 것이 나중에 거짓이 될 줄 누가 알겠는가.
〔이희는 사람들이 미인이라고 칭송하지만, 사슴이 그를 보면 놀라서 후닥닥 달아나고, 물고기가 그를 보면 물속 깊이 숨는다. 누가 과연 참된 아름다움을 아는 것인가. 사람은 소나 양고기를 먹지만 소나 양은 풀만 먹고, 지네는 썩은 뱀을 먹는다. 누가 과연 참된 맛을 아는 것인가. 사람은 습한 데서 자면 허리에 병이 생기지만 물고기는 물에서 살고, 원숭이는 나무 위에서 산다. 누가 과연 참된 거처를 알고 있는 것인가.〕
우리의 가치 기준이란 것도 우리 입장에서만 그런 것이지 크게 보면 꼭 들어맞는 것도 아니다.
〔은나라 말기 팽조는 800년을 살았다는데 고작해야 100년을 못사는 평범한 사람이 자신과 팽조를 비교하면 슬퍼지지 않겠는가.〕
모든 슬픔은 남과 나를 비교하는 데서 생기니 비교를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길고 짧다는 것도 서로 비교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개념이다. 나보다 못 가진 사람도 많은데 굳이 더 가진 사람을 올려다보면 스스로 비참해진다는 거다.
〔산속에 대들보로 쓰이는 키 크고 멋진 나무 옆에 뒤틀리고 옹이 지고 불을 때면 고약한 냄새가 나는 나무가 있었다. 멋진 나무가 못생긴 나무를 비웃자 못생긴 나무는 “그러는 너는 쓸모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베어 가지 않는가.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서 사람들이 베어 가지 않고 천수를 누린다”고 말했다〕
무용지용(쓸모가 없는 것의 쓸모 있음)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고, 불행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위나라 임금이 장자의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높은 벼슬을 제의했으나 장자는 “임금님의 궁전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로서 큰 거북이 껍질이 있다는데, 그 거북이가 진흙 속에 다리를 끌면서도 살기를 바랐겠는가, 아니면 죽어서 호화로운 궁전에 걸리길 바랐겠는가”라며 거절했다.〕
노장사상은 명리를 탐하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저 자연스럽게 운명에 순응하며 살다 죽는 것을 최고로 친다.
〔장자의 처가 죽어서 양나라 재상을 지낸 친구 혜자가 문상을 갔더니 장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아이 여섯을 낳아 길러주고 손톱이 빠지도록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한 처가 죽었는데 곡은 못 할망정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라며 책망하니, 장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도 인간인 이상 처음에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죽음이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그렇게 슬퍼할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장자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은 후 곡을 하지 말라고 유언한다. 중국이 실용적인 민족이라 그런지, 알 수도 없고, 증명되지도 않는 사후세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는다.
장자는 이러한 역발상의 파격적인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토해낸다. 장자를 비롯하여 무위자연으로 표현되는 노장사상은 현실 도피적인 철학이라 사회발전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삶이 괴롭고 힘든 사람들에게는 분명 큰 힘이 된다.
그런 점에서는 불교도 아주 비슷하다. 절간이란 절간은 깊은 산중에 지어져 있고, 현실 도피적이고 개인주의가 강해 단합도 잘 안 된다.
불경 42장경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석가모니가 성도한 후에 어느 부잣집에서 하룻밤 유숙하게 되었는데, 그 부자에게는 천하절색으로 소문난 딸이 있었다. 부자가 보니, 석가모니의 인물됨이 준수하여 사윗감으로 삼고자 하였다. 석가모니가 “그대는 그대의 딸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부자는 “그것은 너무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혀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다시 석가모니는, “내가 보기에는 코에는 콧물이요, 배에는 더러운 오줌과 똥이 들어있는데, 어디가 아름답다는 말이냐?”라고 반문했다.〕
이미 해탈의 경지에 이른 성자에게 속세의 아름다움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석가모니의 제자 중에 시도 때도 없이 솟구치는 음욕 때문에 괴로워하던 이가 있었다. 생각 끝에, 음경을 잘라버리면 괴로움에서 해방될 것으로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다. 석가모니가 이 이야기를 듣고 “마음속에 있는 욕망의 뿌리를 제거하지 않고 육신을 잘라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며 책망했다.〕
음경 자르는 것보다 아예 삶을 버리면 근본적인 해결이 되겠지만 그게 쉬운가. 인연으로 얽힌 주변 사람들에게는 또 얼마나 큰 폐가 되겠는가. 도를 닦는 사람도 잘살아보려고 도를 닦는다는데…….
42장경중 끝부분인 42장은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사람이 도를 닦아도 고(괴로움)는 있고 도를 닦지 아니하여도 고는 있나니, 태어나서 늙어 죽기까지 그 고가 한량이 없나니라. 그런고로 만약 고를 피하고 낙을 구하기로 하면 결단코 그 고를 면치 못할 것이요, 사람의 마음속에 고와 낙이 없는 참된 성품을 보아서 고락을 초월하여야 가히 고를 벗어나리라.〕
힘들다고 머리 깎고 절간에 들어가도 괴로움은 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예불 올려야지, 동냥 다녀야지. 따라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이치를 깨닫고 삶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만 모든 근심과 두려움에서 해방된다는 점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남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보람 있고 재미있게 살다 가자. 인생 뭐 별거 있겠는가.
* 첫 수필집 『앎이란 무엇인가』(2015년)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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