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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觀相/옥창열
시골에서 독학하던 시절, 잠시 역리학易理學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사주 관상 수상 성명학에 관한 책들을 사다 놓고 주변 사람들 운명을 봐주기도 했는데 잘 맞지 않았다. 사주나 궁합 같은 운명론이 큰 틀에서는 맞는다고 우기는 사람도 있는데, 설사 큰 틀 같은 게 있다손 치더라도 사람의 운명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사주(생년월일시)가 같아도 태어난 나라나 시대나 집안이 다를 경우, 운명이 같을 수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신분이 미천하면 과거를 볼 수 없었고, 역적으로 몰리면 삼족이 몰살당했다. 아버지가 양반이라도 어머니가 노비면 그 자식도 노비가 되어야 했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결혼한 여자는 과부가 되더라도 재혼을 할 수 없었는데, 만일 어기고 재혼하여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에게도 차별을 가했다. 운명이나 숙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
오늘날은 어떠한가? 배경이나 재력, 연줄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기회는 균등하게 주어진다.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관직에 진출할 수 있고, 기업을 일구어 부자가 될 수 있다. 흙수저도 금수저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재혼도 얼마든지 가능하므로 옛날처럼 사주나 궁합에 매달릴 필요가 적어졌다.
이러한 운명론 중에 잘만 보면 그나마 좀 맞겠다 싶은 것이 관상이다. 관상은 얼굴 생김새를 보고 길흉화복을 점치는데, 손금을 가지고 논하는 수상도 넓게 보면 관상의 범주에 들어간다. 눈치나 육감이 빠른 사람은 표정이나 행색, 손 모양만 봐도 대강 그 사람의 직업이나 건강 상태, 고민거리를 알아맞힐 수가 있다.
마의상법과 달마상법 등 중국에서 체계화된 관상술이 우리나라에 수입된 것은 신라시대라고 한다. 그후 고려와 조선시대에 가장 활발하게 유행하며 관상학으로 발전했다. 비단, 관상에 대한 관심은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알게 모르게 관상의 영향을 받고 있다. 좋은 상相과 나쁜 상을 구별하고, 좋은 상이 되기 위해 애쓴다. 성형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좋은 짝을 만나거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그에 적합한 상으로 성형 수술을 하기도 한다.
언젠가 유행했던 화제의 영화 '관상'에서는 배우 송강호가 천재 관상가 '내경'으로 등장하여 김종서의 명을 받아 인재 등용에 참여했다. 과거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도 관상을 보고 직원을 뽑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한 노력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만 보고서 그 사람의 능력이나 됨됨이를 정확히 파악할 수가 있을까?
'미인박명' 또는 '인물값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잘생긴 사람은 나름대로 단점이 있을 수 있다. 미남 미녀가 만나서 결혼하면 부부 사이가 냉랭하다는 속설도 있다. 관상 책에 보면, 하늘은 공평해서 탤런트를 골고루 주었는데, 곱사등이와 절름발이 여자가 제일 좋은 명기名器란다. 신체적 장애로 인한 일상의 습관이 여자의 그곳을 명기로 단련시켜서 그런 건지, 장애를 보완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듯이, 한 군데가 부족하면 다른 쪽을 발달시켜 생존할 수 있게 태어날 때부터 프로그래밍이 그렇게 된 것인지. 세상일에는 모두 명암이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사람의 상은 일생을 통하여 늘 변한다고 한다. 그것은 사람의 빈부귀천이 바뀌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곤궁하게 살다가 형편이 펴서 생활에 여유가 있으면 얼굴에 광택이 나는 법이다. 따라서 관상을 맹신해서는 곤란하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여 관상을 좋게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어진 조건에서 자신의 장점을 잘 살려서 최선을 다해 살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일본 에도시대 최고의 관상가로 알려진 미즈노 남보쿠(水野南北)가 저술한 관상학의 고전 '남북상법'南北相法에도, 사람은 나쁜 상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다고 되어있다. 생명은 하늘이 준 것이지만 장수는 본인의 노력에 의한 것으로 음색주식淫色酒食을 조심하고 덕을 쌓으면 단명의 상을 가지고 있어도 자연히 장수한다고 한다. 자아自我를 극복하면 상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하였는데, 관상보다도 운명을 바꾸려는 노력이 중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 옥창열 제2 수필집 『앎이란 무엇인가 2』(2019년)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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