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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열
요즘은 보신탕을 먹을 일이 거의 없지만, 현직 시절에는 직장 근방에 보신탕 잘하는 집이 있어서 가끔 먹었다. 보통 직원 여럿이 같이 가서 부추잎 위에 개고기 수육을 얹어 김을 낸 후 갖은 양념장에다 고기를 찍어 먹거나 개고기 수육에 들깻잎과 들깻가루 등을 잔뜩 넣어 끓인 탕으로 먹었는데, 맛이 있었다. 개고기는 동물 중 인체 조직과 가장 유사해서 흡수가 빠르고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다른 고기에 비해 연한 편인데, 고기 자체가 맛있다기보다 들깨나 부추를 듬뿍 넣어주어서 더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안전활동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외국어대학에 영어연수를 나갔는데, 옆자리에 같이 앉아 공부하던 학생 중에 고 박세직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의 비서를 하다 온 분이 있었다. 고 박세직 씨는 안기부장과 국회의원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분으로 보신탕을 좋아해서 가끔 자신이 예약을 해드렸는데, 손님이 있는 데서 눈치 없이 “개고기 예약할까요?”라고 물었다가 욕을 먹은 적이 있었단다. 정치인 중에 보신탕을 좋아한 분은 상당히 많은데, 대표적인 인사가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 영어연수 시절, 하루는 수업시간에 개고기 식용문제를 두고 토론을 벌이는데, 한국에서 온 여학생 하나가 “한국인은 대부분 개고기를 안 먹는다.”며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가. 내 상식과는 달라서 “대부분 한국인은 개고기를 먹는다.”고 친절하게 정정해 주었다. 물론, 내가 그렇게 말한 이면에는 개고기 먹는 게 뭐가 나쁘냐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그러자, 일본에서 온 남학생이 “일본인은 개를 먹지 않는다. 한국인은 미개인이다.”라며 비난했다. 나는 다시 “한국에서는 개보다 소가 더 중요한 동물이다. 그래서 일 년에 하루는 사람이 먹는 밥을 주는 풍습도 있다. 일본인은 소를 먹는데, 도대체 개와 다른 점이 뭐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지도교수의 설명으로는, 개는 인간과 가까우므로 가족의 일원이라고 생각해서 먹지 않는데, 먹고 안 먹고는 문화의 차이일 뿐이라고 했다.
그럼, 개고기는 우리나라만의 전통음식인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서구권 나라에서도 개고기 식용은 예전부터 이루어져 왔다고 한다. 하지만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변화와 풍부한 먹거리로 많은 지역에서 개고기 식용이 법으로 금지되는 추세에 있는 건 사실이다.
미국과 대부분 유럽국가는 20세기 초까지 개고기를 식용했고, 법으로 금지한 국가는 독일(1986), 필리핀(1998), 태국(2000), 대만(2001) 등이다. 2차 대전까지만 하더라도 프랑스 수도 한복판에 개고기 전문 정육점이 있었고, 스위스는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개고기를 먹고 있는데, 정부는 “해당 지역의 음식문화이니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일본은 관습상 개고기 식용이 금기사항이고, 중국은 2010년 금지법안이 제출되었으나 통과되지 않았다.
지금도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인도, 동남아, 아프리카, 중남미(원주민) 등지에서는 여전히 개고기를 식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우는 전체적인 추세에 역행하여 오히려 합법화 움직임이 있다. 인류의 동반자 같은 개는 도살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지만,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주요 종교 중 불교에서는 수행자들에게 육식, 그 가운데서도 특히 개고기를 먹지 못하게 금한다. 그런데 석가모니의 원래 가르침에는 살생을 금하라고 했지 고기를 먹지 말라는 가르침은 없었다. 석가모니 자신도 대장장이 ‘춘다’가 공양한 상한 돼지고기 요리를 먹고 복통을 일으켜 열반에 이르렀다. 따라서 초기 불교에서는 그런 계율이 없었는데, 후대로 오면서 대승불교 계열에서 고기나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을 섭취하면 수행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금지했다는 것이다.
육식 중에서도 특히 개고기를 금한 이유는, 불교사상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인도 전통신앙에서 개를 현세와 내세를 잇는 사자로 보고 있는 데다, 개는 사람과 인연이 많은 동물로 윤회사상에 의해 조상이 개로 많이 태어난다는 믿음과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
대승불교가 개고기를 비롯한 육식을 금한 것은 생명 존중 사상이 투철하여 그렇다 치고, 그럼 채식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의 주식인 벼나 밀이나 채소는 생명이 아닌가? 나는 불교재단인 동국대를 나왔는데, 여기서는 의무적으로 불교학 개론과 불교 문화사를 교양과목으로 이수해야 한다. 당시 수업시간에 문득 이 문제가 궁금해서 지도교수에게 질문했더니, “동물은 의식이 있는 유정물(有情物)이고, 식물은 의식이 없는 무정물(無情物)이라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부 수긍이 가는 점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의문이 여전했다. 살생을 금하자는 취지라면 식물도 생물이다. 식물도 감지하는 체계가 다를 뿐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인식하고 기억도 한다고 하지 않는가? 식물학자들에 따르면, 모든 식물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신경전달 물질을 사용해서 기능을 조절하는데, 빛과 어둠을 감지하고, 우리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전자기 파장을 감지한다. 다만, 식물에는 볼 수 있는 눈이 없고 우리에게는 광합성이 가능한 잎이 없을 뿐이다.
식물은 향기를 풍기는 동시에 주변 냄새를 맡고 위험을 감지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만지고 있다는 걸 알 뿐 아니라 생물학적 정보를 저장하고 기억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살기 위해선 어차피 동물이든 식물이든 먹어야 산다. 다른 생명을 해쳐야만 하는 숙명인 것이다. 흙이나 돌을 파먹고 살 재간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사람과 가까우면 먹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참으로 주관적인 것이라서, 윤리적인 이유로 개고기를 먹지 말자는 데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다만, 보신탕을 삼가야 할 다른 이유가 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개고기가 보신탕이었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영양학적 근거가 없고 오히려 몸에 안 좋은 콜레스테롤 함량이 매우 높다고 한다. 한의학적으로, 개고기가 양기를 북돋워 주기는커녕 좋지 못한 화(火)의 에너지가 신진대사를 방해해 오히려 원기를 떨어뜨린다는 주장이 있다. 개고기가 정력에 좋다는 것은 속설에 불과할 뿐 정력에 좋은 성분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육장에서 기르는 개는 다량의 항생제를 남용하여 체내 축적이 우려되며, 소 돼지보다 사육 도축 유통의 전 과정이 전문화 체계화되지 못하여 먹거리로서 부적합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보신탕을 고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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