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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열
내 사촌 형 중에 철학관을 차린 사람이 있다. 원래 상선 선장을 하다가 간이 안 좋아서 배는 타지 못하고 육지에서 선박수리업을 차려 돈을 좀 번 형인데, 오랫동안 철학 공부를 한다고 하더니 아예 직업으로 나선 것이다.
얼마 전 큰 조카 결혼식에서 오래간만에 그 사촌 형을 만나서 한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이 든 아줌마들이 주로 사주를 보러 많이 오는데, 대개는 남편이 새로 벌인 사업이 잘되겠느냐는 둥,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느냐는 둥 그런 것을 묻는단다. 형인들 그런 걸 알 턱이 없어서 일반적인 이야기로 시간을 끌면, 조바심이 난 고객이 "50억 원쯤 벌 수 있겠느냐?"며 구체적인 액수가 등장하고, 할 수 없이 "50억은 어렵고 5억 원쯤 벌겠다."고 구렁이 담 넘는 식의 대답을 안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사촌 형은 스스로 자신의 사주풀이가 엉터리라는 점을 암시하면서도 궁합에 대해서는 맞는다고 우겼다. 어떤 과학적인 근거를 대지는 못하고 그냥 경험적으로 바르다고 느낀다는 뜻 같았다. 반박을 좀 하고 싶은데, 나이가 근 10살 많은 형이라 어려워서 그러지도 못하고 듣고만 있었다.
내 형 중에는 고등학교 때 형수를 만나서 오래 연애를 하다가 결혼한 형이 있다. 결혼 전에 어머니가 사주쟁이에게 가서 궁합을 보았는데, 궁합이 나빠도 보통 나쁜 게 아니더란다. 둘이 결혼하면 어느 하나가 죽을 팔자더란다. 그래도 오래 연애를 해서 물릴 수도 없고, 찜찜하지만 그냥 결혼을 시켰는데, 아들 하나 딸 둘 낳고 잘만 살았다. 그 형수는 전라도 분인데 예의가 바르고 음식 솜씨도 좋았다. 형 집에 가서 밥을 먹으면, 방금 지은 더운밥에 돌돌 만 김밥과 잘 익은 김치랑 멸치볶음을 내놓는데, 어찌나 맛있는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했다.
현직에 있을 때, 여직원 하나가 하루는 인생 상담을 해왔다. 대학 때 만나서 10년 가까이 열애하다 결혼하려고 하는 남자가 있는데, 남자 측 집안에서 갑자기 궁합이 나쁘다며 반대를 한다는 것이었다. 시어머니 될 분이 독실한 불교 신자인데, 절에 가서 스님에게 물으니 '살(殺)'이니 '충'(衝)이 끼어서 큰일 난다고 해서 다른 사주쟁이에게도 가서 물어보니 매한가지더란다. 평생을 함께하기로 철석같이 맹세한 남자도 그 말을 듣고는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며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나도 불교를 오래 믿었지만, 불교의 가르침은 그게 아닌데 무슨 그런 사이비 스님이 있느냐고, 그런 미신 믿지 말고 그냥 도망가서 결혼을 하든지 애를 배든지 해버리라고 충고했던 기억이 난다. 멀쩡하게 사랑 잘하는 청춘 남녀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무슨 그런 엉터리 불제자가 다 있는지....
인도의 전통 철학을 기반으로 탄생한 불교는 윤회설을 주장하는데, 선한 업(카르마)을 많이 쌓으면 다음 생에 더 좋은 세계에서 더 좋은 현신으로 태어난다고 가르친다. 운명이란 게 미리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불교는 어떠한 경우에도, 운명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거나 숙명이 정해져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불가촉천민도 도덕적으로 선한 업을 많이 쌓으면 다음 생에는 브라만도 될 수 있다는 게 석가의 혁명적인 가르침이자, 거기에 불교의 위대성이 있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궁합이 나쁘다고 해도 결혼해서 잘만 사는 부부가 있고, 반면에 궁합이 좋다고 해서 결혼한 부부 중에도 이혼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로, 가정법원에서 이혼하는 부부들의 70%는 애초에 궁합이 좋다고 해서 결혼했다는 통계가 있었다.
따라서, 과학적 근거도 없는 사주니 궁합 같은 걸 맹신할 게 아니라 차라리 결혼 상대 집안의 유전질환이나 정신질환 등 결혼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만한 결격사유가 없는지를 살펴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할 때는 서로 호감을 느낄 만한 장점이 있어서 사랑하게 되었을 거고, 일단 결혼에 골인하여 일가를 이룬 후에는 최선을 다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 옥창열 제2 수필집 『앎이란 무엇인가 2』(2019년)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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