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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창 열/수필가, 시조 시인
나는 시골에서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나 우리 집은 부모님까지 모두 아홉이나 되는 대식구였다. 그중에서 무슨 종교든 믿음을 가졌던 사람은 어머니와 나 단 두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믿는 걸 반대는 안 하셨지만, 당신 자신은 한 번도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나 외의 다른 남매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면, 신심이란 것도 좀 타고나는 것 같다. 우리 집에서도 조상 전래의 유교식 풍습을 지키고 제사를 지냈으나 그것은 이미 관습화된 것이라 종교라고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어머니는 당시 대다수 시골 아낙들이 그랬던 것처럼 불교를 믿었다. 불교를 믿었다고는 해도 살기에 바빠 정기적으로 절에 가서 절을 한 적도 없고, 무슨 불교 관련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으신 적은 더더욱 없었다. 점 보고 굿하는 것을 즐겨서 나 어릴 때 우리 집 아래채에 한동안 점쟁이 아줌마가 살기까지 했다. 또 어머니는 안방 한쪽에다 조그만 명당을 만들어놓고 매일 새벽 물 한 그릇을 떠놓고 기도를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불교에다 무속신앙을 가미한 신앙생활을 하셨던 것 같다.
잠결에 어머니의 기도 소리를 들으면, 멀리 길 떠난 자식 무탈하게 돌아오게 해달라거나 아무개 자식 시험에 붙게 해달라거나 그런 내용이었는데, 그 기도 덕분에 그나마 오늘의 내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항상 어머니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오랜 종교편력 끝에 지금은 특정종교를 믿지 않고 무신론자에 가까운 편이지만, 종교의 유무나 신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기도의 힘은 긍정하는 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학교도서관에서 석가모니 일대기를 읽었고, 어디서 스님들이 독송하는 불경을 얻어 매일 염불을 하기 시작했다. 그 불경은 천수경/반야심경/고왕경 등 세 가지가 적힌 작은 책자였는데, 번역되어있는 게 아니고 어려운 한문을 그냥 한글로 음을 달아놓은 데 불과하여 뜻도 모르고 그냥 매일 읽었다. 하루 다섯 번씩 읽다 보니 얼마 뒤에는 그 세 가지 불경 전체가 그대로 암송이 되었다. 내가 좀 조숙해서 그랬는지, 이상하게 이 세상과 인생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고, 그런 문제를 푸는 열쇠가 종교란 생각이 들었으며, 그 당시에 유일하게 접할 수 있었던 불교에 그렇게 탐닉하게 되었던 것 같다.
무슨 종교든 믿게 되면 그 종교의 계율을 지켜야 하는데, 불교는 첫째 계율이 살생을 하지 말라고 한다. 인간에 대한 자비를 넘어 모든 생명에 대한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불필요한 살생을 금하도록 가르치며, 특히 수도자는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다. 시골 길을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개미 같은 것을 밟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런 것을 조심했고, 다음에는 아이들이 장난으로 잡아 죽인 개구리를 흙에 묻어주었다. 거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일체의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는데, 초등학교 4학년부터 3년 정도의 기간이었다. 한창 자랄 시기인데, 그렇게 하고도 키는 우리 식구 중에서 내가 제일 크니 그것도 신기하다면 신기하다.
어느덧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는데, 불교에 심취하다 보니 이상하게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냥 불교의 가르침이 좋았고, 시골의 가난한 집안 형편과 행복해 보이지 않던 부모님의 결혼생활 등을 보면서 삶에 대한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갈등하면서 본 시골 중학교 입시에서 230여 명 되는 동기생 중 생각지도 않던 1등을 하고 장학생이 되면서 결국은 진학을 택했다.
중학교 공부는 한가하게 하루에 다섯 번씩 염불이나 하고 있을 정도로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입학 후 한 달 뒤부터 염불을 때려치우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기아로 죽어가는 지구촌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일부 동물에 대한 살생은 필요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다시 고기를 먹게 되었다. 평생 금욕하고 결혼을 하지 않겠다던 결심도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서서히 바뀌었다.
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 우리 동네에 왜색종교인 일련정종이 들어왔고, 어머니와 동네 몇몇 분이 그걸 믿게 되었다. 일련정종은 13세기에 일본의 일련(日蓮=니찌렝)이란 스님이 창시한 불교종파인데, 대승불교의 중심이 되는 경전인 법화경(묘법연화경)을 종지(宗旨)로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원효의 정토종(통불교)처럼 글자를 모르는 대중도 누구나 쉽게 믿을 수 있게 한 것으로, “남묘호렌게쿄”(나무묘법연화경=묘법연화경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만 암송해도 극락에 간다고 가르친다. 글자를 아는 사람은 기도할 때 법화경을 읽기도 하는데, 염불하는 방식이 4분의 4박자로 노래하듯이 천천히 하는 일반불교와는 달리 말 달리듯이 쉬지 않고 빠르게 한다.
나의 부모님은 해방 전에 일본에 오래 사셔서 그런지 일본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어서 왜색종교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나 싶다. 내 고향은 일본에 가까운 한반도 남쪽 끝이라 그런지 일련정종이 꽤 많이 퍼져있었고, 부산에 가면 지회도 여러 군데 있었다. 그곳에서 펴내는 불교 관련 자료도 정기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자연히 그걸 접하게 되었고,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점에서는 일반불교와 차이점이 없었다. 나도 어머니 권유로 가끔 모임에 참석하기도 하고 읽은 걸 발표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 모임에는 크게 배운 사람이 별로 없어서인지 나보고 무슨 간부를 하라고 부추겨 잠시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중학교 이후 고향을 떠나 살게 되면서 바쁘기도 할뿐더러 왜색종교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아 자연스럽게 정리를 했다.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며 자식 걱정을 하셨는데, 여성의 신심이 남성보다 더 깊고 끈질기며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고향에만 가면 여전히 신심을 가지고 믿는지 물으시곤 해서 난처하고 죄스러웠다. 어머니께서 평생을 손이 부르트도록 고생하시면서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고 기도해 주신데 대해, 그분의 종교가 무엇이었든 지에 상관없이, 이 순간 그 고마움에 가슴이 멘다.
중학교 졸업 이후 계속 수없이 많은 시험을 치르면서 항상 마음이 불안하였고, 그런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정신을 통일시키기 위해 뭔가 신앙을 가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집 주변에 있던 교회에 우연히 나간 것을 계기로 한동안 기독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기독교는 또 어떤 진리를 가르치나 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한편으로 우주와 만물의 생성원리를 비롯한 자연과학을 배우고 지식이 쌓이면서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교리가 과학적 진실과는 많이 어긋나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지구의 나이가 45억 년 되었다는데, 교회에서는 고작 6천 년 전에 창조되었다고 하고, 5천 년 전쯤에는 인간의 수명이 지금의 소나 말과 같은 20년 정도였다는데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 중 아담은 930년을 살았고, 다른 인물들도 보통 150년 이상 300년을 산 것으로 되어있어 구약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유대 민족의 신화나 전설을 기록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구약이나 신약, 특히 시편은 하나의 위대한 문학이기도 해서 불경과 함께 꼭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을 중시하는 나의 성격상 사실과 이치에 들어맞지 않는 주장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다니던 교회에 나가지 않으니까 처음에는 집사 같은 사람이 찾아오다가 나중에는 목사도 찾아오고 난리였다. 이사를 하기 전에는 도저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괴로웠다. 나중에는 누가 찾아오는 기미가 보인다 싶으면 슬슬 피했다. 그 후에는 어느 종교든 선뜻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어느 종교든 믿다가 안 믿으면 좀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하여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천주교 성당에도 잠시 다녀보고 라엘리안 모임에도 나가보았는데, 가장 극성맞은 곳이 기독교 같았다.
대학을 마치고 공무원으로 들어갔는데, 직장생활이 바쁘고 힘들기도 했지만 이미 각 종교나 사상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장단점이 눈에 들어오다 보니 어느 한 종교에 선뜻 다가서기가 쉽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았던 데다 불교와 유사한 노장사상 계통의 책을 많이 읽어 사고방식은 불교 쪽에 가까운데 불교사찰은 산중에 들어앉아 있어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기독교회는 가까이 있어 접근하기 좋고 가보고 싶기도 했는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너무 극성맞아서 망설여졌다. 게다가 불교는 차근히 이치를 따져 사람을 설득하는 방식인데,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무조건 믿고 보라는 식으로 독단적이고 배타성이 강한 점도 마음에 걸렸다.
처가는 천주교 집안인데, 성당에 독실하게 다니는 사람은 장모님뿐이었다. 아내도 어릴 때 천주교 영세를 받았으나 성당에는 전혀 나가지 않는다. 나는 종교나 신비 현상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아내는 그런 관심도 없다. 그저 열심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고 지나칠 정도로 알뜰하게 물건값 깎아가며 살림 잘하는 것 빼고는 더 이야기할 게 없다.
명퇴하고 자영업을 잠시 하다 세를 주고 등산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살도 빠지고 건강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 같았다. 비용도 골프와 비교하면 껌값 수준이라 부담이 없고.... 그런데 등산모임에서 예전에 직장생활 할 때 모시던 분과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성당에 나오라고 해서 여간 난처한 것이 아니었다. 종교란 아편 같아서 한번 들어가면 무슨 등산동호회처럼 금방 나올 수 있는 곳도 아니어서 더욱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았던 종교 관련 책들을 다시 한번 들춰보면서 종교와 신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정리가 끝날 때쯤이면 내가 무슨 종교를 어떻게 믿어야 할지 그냥 이대로 살다 죽어야 할지 결론이 나려나....
* 제1 수필집 『앎이란 무엇인가』(2015년)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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