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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수필 낭송
보리밭 사잇길로/옥창열
은퇴 후 귀향한 친구가 보리쌀을 가져와서 교회 앞에다 부려놓고 팔고 있다. 장사의 어려움을 느껴보고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한단다. 쌀이 남아돌고부터 보리는 파종을 잘 안 하는데, 그래도 엿기름이나 보리밥용으로 가끔 재배하는 모양이다.
지금이야 보리밥을 별미 내지 건강식으로 먹지만, 우리 어릴 때만 해도 가난의 상징이었다. 배고픔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 세대는 잘 모른다. 왜 나이 든 세대가 보릿고개란 단어에 눈시울을 붉히는지, 박정희에게 그렇게 열광하는지.
밥 지을 때 보리쌀은 잘 익지 않아서 먼저 삶은 후에 쌀 위에다 얹고 다시 불을 땐다. 뜸이 들면, 아버지 그릇에만 흰 쌀밥이 좀 들어가고, 나머지는 거의 꽁보리밥·쌀밥을 조금 남기시나 하고 눈알 빠지게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었다.
한창 자랄 때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 덤불 딸기나 오디 같은 시답잖은 주전부리에 성이 덜 찬 아이들은 콩 서리나 밀 서리를 했다. 콩이나 밀은 풋 익었을 때 잘라서 구우면 고소한 맛이 났다.
보리는 맛이 덜한 데다 깔끄러운 수염 때문에 서리의 대상이 아니었는데, 대신에 새까만 깜부기를 골라 간식처럼 따 먹고 다녔다. 깜부기는 보리나 수수에 잘 생기는데, 덥석 물면 오징어 먹물 먹은 듯 입안이 새까매진다.
삼남 지방에“비야 비야 오지 마라 우리 엄마 빨래 걱정/비야 비야 오지 마라 우리 아빠 물꼬 걱정/비야 비야 오지 마라 우리 누나 눈썹 걱정”이란 동요가 있는데, 처자들이 눈썹을 그리던 화장품이 다름 아닌 깜부기였다.
그런데 그 깜부기가 사실은 병든 보리라고 해서 놀랐다. 출출하면 따 먹고 다녔는데 아무 탈이 없었던 걸 보면, 독성이 별로인가 보다. 모르고 먹었으니 약이 된 건가? 실제로 극미량의 복어 독이 신경통에 좋다는 말을 들었다.
보리는 보통 가을에 파종하는데, 사래 긴 밭을 소가 끄는 쟁기로 일일이 갈아엎은 후, 작은 뗏목처럼 생긴 써레로 써레질을 한다. 이 써레에 아이들을 두서너 명 태우는데, 썰매와 함께 시골 아이들의 빠질 수 없는 놀이였다. 굵은 흙덩이를 타고 넘을 때는 파도를 타는 듯한 스릴이 있었다.
봄에 파종하는 봄보리도 있지만,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나는 가을보리가 수확이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맛도 좋다. 찬 서리에 못 견딘 흙이 들떠 오르면 파릇파릇한 보리싹을 일일이 밟아주는데, 이런 인고의 세월을 거친 후에라야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봄이 되어 데워진 대기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보리는 금세 무럭무럭 자라 들판을 푸른 물결로 뒤덮는다. 보리밭 자락 사이로 참새가 집을 짓고 종달새가 날아오른다.
김삿갓 전기에는 상곡마을 명숙이와 보리 고랑을 요 삼아 뒹굴던 이야기가 나온다. 깔끄러운 보리 수염이 피기 전, 우거진 보리밭은 이불이 되고 요가 되어 주었다. 물레방앗간과 함께 시골 연인들의 훌륭한 데이트 장소였던 것이다.
유월 초여름의 열기 속에 보리는 똘망똘망 영근 얼굴을 선보인다. 농부들은 타작을 위해 밭 가운데 터를 잡고, 둘이 마주 보고 장단 맞추어 힘차게 도리깨질을 한다. 알갱이가 다 떨어져 나가면 짚을 가장자리로 쳐 낸다.
한 식경이 지날 때쯤이면 짚더미가 산처럼 쌓이고, 아이들이 그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논다. 엄마의 배 속처럼 아늑하다. 한쪽으로 들어가서 반대쪽으로 동굴을 만들며 뚫고 나오던 기억이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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