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79 회
AI 수필 낭송
옥창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집집마다 소를 몰고 나온다. 산에 도착하면 뿔에다 고삐를 둘둘 감아 풀어놓는다. 소들은 풀을 뜯고, 아이들은 놀기에 여념 없다.
석양이 서산에 걸리면, 소 목에 매단 워낭소리를 좇아 소를 찾는다. 워낭의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어서 소리도 개성이 있다. 잘그랑거리기도 하고 땡그랑거리기도 한다. 소리를 듣고 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한다.
소들은 보통 한 데 어울려 풀을 뜯으며 이동하는데, 우리 집 소가 유독 별나서 맨 앞에서 소들을 선도하다가 가끔 혼자 사라져 버릴 때가 있었다. 몇 번을 잃어버려, 동네 청년들이 손전등을 들고 산을 뒤져 간신히 찾아내곤 했다. 워낭을 제일 큼지막한 걸로 달았는데도 속수무책.
동네 소들은 황송아지를 빼면 전부가 암소였다. 황소는 사나워서 키우기가 어려워, 젖을 뗄 때쯤 소 장수에게 팔려 간다. 두어 마을에 한 마리꼴로 어른 황소가 있었는데, 온 동네 송아지가 모두 그의 씨였다.
암소가 발정이 나면 황소에게 데려가서 접을 붙이는데, 공짜가 아니고 돈을 주어야 했다. 사나운 황소를 키우는 대가로 황소 주인이 받는 씨 값이다.
한번은 우리 집 암소가 발정이 났다. 아버지가 접을 붙여오라고 시켜서, 본의 아니게 그 신성한 행사를 보게 되었다. 황소가 코를 벌름거리더니, 고개를 쳐들고 하품인지 웃음인지 헤벌쭉 입을 벌린다. 황소 주인이, 주책없이 일어선 황소 거시기를 잡고 교접을 도와주는데, 세상에! 토끼가 따로 없었다.
나 태어나기 전, 우리 집에도 검정 황소를 키운 적이 있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장작을 달구지에 싣고, 수십 리 떨어진 부산에 가서 팔았는데, 바퀴가 무거운 쇠라서 황소 아니면 감당하기가 어려웠단다. 피곤한 아버지가 달구지 위에 앉아 졸고 있으면, 황소가 알아서 터벅터벅 어둠을 헤치며 집을 찾아왔다고.
이것은 형이 들려준 이야긴데, 예전에 황소 달구지가 산길에서 호랑이를 만났단다. 주인은 너무 놀라서 황소의 멍에를 끌러주지도 않고 도망쳤는데, 혼자서 멍에를 벗고 호랑이를 물리친 후, 집에 와서 괘씸한 주인을 떠받아 버렸다고.
시골에서는 소가 큰 재산이다. 농사일에 필수일 뿐 아니라, 팔아서 자식 공부를 시키고 혼례도 치렀다. 힌두교에서는 소를 먹지 못 하게 하는데, 시바 신이 흰 소를 타고 다녔기 때문이란다. 실제로는, 소가 농업 생산력과 직결되기에 그런 금기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
이광수는 우덕송牛德頌에서 소의 덕을 한없이 칭송한다. 끈기와 인내의 상징이 바로 소다. 진드기가 덕지덕지 붙어 피를 빨아도, 쇠파리가 끈질기게 달려들어도 긴 꼬리 한번 휘두르고는 유유히 되새김질하는 모습이 가히 성자聖者를 방불한다. 선인들은 이런 소의 성품을 동경하여 소를 그리고, 소 우牛 자를 넣어 호를 지었다.
소는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그래서 내 고향에 가면, 일 년 중 하루는 소에게 사람이 먹는 밥과 나물을 주는 풍습이 있다. 마땅한 대접이자 최소한의 예의다.
다음 동영상
총의견 수 0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 후 이용가능합니다.
0/300